매일신문

[추억여행]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제비를 기다리며

그리움은 아쉬움이다. 아쉬운 것은 늘 그리움으로 남는다. 흔하디흔한 것과 언제라도 만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은 그립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다. 일상에 쫓겨 살다가 문득 옛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생각해보았다. 아련히 떠오르는 것들…. 그 중에 하나가 제비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렇다. 제비! 제비 못 본 지가 언제더라? 제비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땅. 그렇구나. 우린 제비도 찾지 않는 땅에 살고 있구나…. 괜스런 자괴감이 들었다. 제비에 대한 추억으로나마 잠시 마음을 달래본다.

"지지배배 주지주지 빼드드..."

아침부터 귀에 익은 제비소리에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작년 겨우내 강남 갔다던 제비들이 빨랫줄에 앉아 꽁지깃을 들썩이며 그네 타듯 지저귀고 있었다. "어? 제비네? 엄마, 제비 왔어요" 밥 먹다 말고 모든 식구들이 제비를 맞았다. "어서와. 그래도 잊지 않고 돌아 왔네" 엄마가 먼 길 갔다 돌아온 자식처럼 말을 건네며 반겨주었다. 어느 때 보다 더 반가운 제비들이었다.

지난여름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릴 사건이 있었다. 더운 날씨 탓에 우물가에서 심심풀이로 깨복쟁이 동무 기재에게 물 몇 방울을 튀겼다. 기재도 질세라 물 몇 방울로 화답을 했다. "앗 차거!"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한 물 튀기기가 점점 오기로 번졌다.

곧 물싸움이 되었다. 우물에서 두레박 채로 물을 퍼부으면 기재는 장독대로 마당으로 도망 다녔다. 그렇게 쫓겨 다니던 기재가 누군가? 장난치기로는 동네의 으뜸 중에 으뜸이 아닌가? 도망만 다닐 기재가 아니었다. 우물을 점령당한 기재는 전세가 여의치 않자 뒷간으로 쫓아갔다.

'저놈이 오줌이 마렵나?' 하고 의기양양해 하는데, 엄마나? 거기서 긴 막대에 달린 오줌 바가지를 들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아뿔싸…. "야!, 야!" "흐흐흐" 기재는 오줌 바가지를 들고 흐뭇한 미소로 역전의 용사처럼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오줌 세례를 퍼부을 기세에 눌려 나는 까불거리며 숨을 데를 찾아야만 했다. 이리저리 똥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 못하자 더욱 신이 난 기재가 우물까지 들이닥쳤다.

'아이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 심정으로 급한 김에 대청마루로 올라서서 안방으로 숨고 보자 싶었다. 대청마루로 올라설 때, 그 때였다. 기재의 오줌 바가지 공세가 시작되었다.

나를 겨냥한 오줌은 내게 몇 방울의 오줌만 튀기고 8할 정도는 처마 밑에서 천둥벌거숭이 놈들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제비네 집을 덮치고 말았다. 기재가 약이 올라 오줌바가지를 힘껏 던진다고 던진 게 그만 제비집을 건드릴 줄이야. 모든 것이 아수라판이 되었다.

"지비배배 주지주지" 두 마리의 어른 제비들은 둥지를 박차고 가까스로 화를 면했지만 오줌세례를 받은 둥지는 그만 스르르 힘없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둥지 안엔 깃털이 겨우 난 새끼 세 마리가 있었다. 어미새들이 죽기 살기로 왔다 갔다 하며 몸부림을 치고 온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의리 없는 기재는 오줌바가지를 내팽개치고 달아나고 말았다.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떠안은 나는 어떻게 이 비상사태를 수습할지 몰라 그저 땅바닥에 떨어진 새끼들과 피를 토하듯 울부짖는 어미새들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지난여름, 벌건 대낮에 짭짤한 우박이 쏟아지고 집이 내려앉는 천재지변(?)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아준 제비가 얼마나 눈물나게 고맙든지. 제비들이 다시는 이 집을 찾지 않을 것이란 절망감 끝에 날아온 제비였다.

이제 더 이상 제비가 날아오지 않는 이유는 둥지를 틀 집의 구조가 많이 바뀌었고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어 환경오염과 농약 살포로 먹잇감이 줄어든 탓이다. 우리의 생태계 파괴는 제비를 더 이상 머물게 하지 않았다.

음력 9월9일이면 중국 황하강 이남으로 겨울나기를 했다가 이듬해 삼월삼짓날 어김없이 돌아왔던 제비는 우리 민족의 길조였다. 수가 겹치는 날에 갔다가 수가 겹치는 날에 돌아오는 새라고 해서 민간에서는 감각과 신경이 예민하고 총명한 영물로 인식하고 길조(吉鳥)로 여겨왔다. 집에 제비가 들어와 보금자리를 트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으로 여겼다. 지붕 아래 안쪽으로 들어와 둥지를 지을수록 좋다고 본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제비에게서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비가 새끼를 많이 치면 풍년이 든다고 믿기도 했다.

경북 안동 연비사(燕飛寺)의 제비원에는 기와를 이는 와공(瓦工)이 지붕에서 떨어져 몸은 산산조각이 나고 혼은 제비가 되어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안동으로 지나칠 일이 있으면 제비원을 찾아 제비로 구원을 받은 민중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http://www.tourandong.com)

김경호 (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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