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 조각가 이장우

"녹록지 않은 현실…그래도 한번 해볼라고요"

조각가 이장우(41) 씨는 최근 즐거운 경험을 했다. 지난달 서울 전시회에서 작품 'CYBORG-Time Box'(사이보그-시간의 상자)가 고가에 팔렸던 것. 이 전시회가 열린 것 자체가 묘했다. 지난해 11월 봉산문화회관에서 연 개인전을 본 중앙갤러리의 정대영 대표가 제안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제껏 겪어 보지 못했던 일들이어서인지 이 씨의 기분은 한껏 고무돼 있었다. 그래도 현실은 아직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1995년 첫 개인전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여는 동안 작품 판매는 '심각한 수준'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조각은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윤갤러리에서 연 첫 전시회의 암담한 결과는 패기 있는 젊은 작가의 기대감을 산산이 부셔버렸다. 차가운 현실의 벽은 작업을 계속하면서 더욱 커져만 갔다. "모두 가난하게 살 각오가 된 사람들이다."는 각오와 예술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으면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 씨는 이 어려운 현실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지난해 열린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 부대행사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만난 국내외 작가들과의 만남은 이 씨에게 하나의 길을 열어줬다. 이 씨는 "그동안 너무 시각이 좁았음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현실에 부닥쳐 바깥을 돌아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외국 작가들로부터 해외 조각심포지엄 행사에 참여하는 방법 등을 들었다. 동료들과 함께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이상헌 씨와 김봉수 씨는 올 7월 스위스와 프랑스·체코 등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다. 두 사람에게 지원되는 금액도 국내의 현실에 비하면 엄청나다.

"기다려서 될 일이 아니다.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이 씨는 이제 지역에서도 해외 작가들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 중이다. 벌써 시작된 것은 다른 지역 작가들과의 교류. 조각심포지엄에 참가한 부산 작가 정희욱 씨와 인연이 돼 양 지역을 서로 방문하고 있는 것.

현재는 작가의 작업실에 모여 술 한 잔 기울이며 정보도 교환하는 수준이다. 이 씨는 "현재 지역 작가들이 연대해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해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1992년 외인조각회 창립 회원으로 초대 회장도 지낸 이 씨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어쩌면 현실적 장벽 앞에 무너져 내리는 후배들을 위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후배들에게 '무조건 하라', '어떻게 하라'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라 강요를 못 하겠다."고 고백한 이 씨이기 때문이다.

조각프로젝트, 바다미술제 등에서 조각이 부각되고 있는 부산은 너무나 부러운 사례. 이천과 보령의 국제조각심포지엄도 마찬가지이다. 지역 미술계에서 조각 부분이 미약하다지만 "대구에서는 벌써 생겼어야 했다."는 것이 이 씨의 주장이다.

그는 동제미술전시관 잔디밭에 조성된 조각공원을 실례로 들었다. 졸업하는 작가들의 재학 시절 작품 등을 모아 꾸며놓으니 사람들도 즐기고 미술관 측에서도 장식이 돼 좋다는 것이다. 부산이 조각 작품을 이용해 공원을 만든 것처럼 대구시도 조각에 투자를 하면 조각공원을 조성하는 등 공공미술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조각심포지엄이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2003년 청도에 처음으로 개인 작업실을 구해 '공부나 하며 좀 쉬자.'는 마음으로 틀어박혀 있다가 이제 슬슬 활동을 재개하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더 잘된 일이다.

봉산문화회관에서 4월 7일까지 열리는 '조각 스튜디오-조각가 스튜디오 들여다보기전'에 참여 중이고, 5월에는 고토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잡혀 있다는 이 씨의 꿈은 '자기 작업에 대해 확실히 맥을 잡은 뒤 여러 나라에 다녀보고 싶다.'는 것. 어둡기만 했던 현실의 터널을 지나 이제 '밝은 미래'를 향해 한 단계씩 나아가는 시점이어서 그리 가까운 현실의 일은 아니겠지만, 작가가 아직도 웃을 수 있는 이유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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