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역대 미국 대통령 41명의 위트 리더십

역대 미국 대통령 41명의 위트 리더십/ 박봉현 지음/ 도서출판 오름 펴냄

지난 4년간 우리는 대통령의 '말'로 인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적잖게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것도 정치발전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과거의 군사독재 또는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비난과 비판이 대통령에게 쏟아지고 있는 현실은 정치적 자유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권위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대적 사명에 걸맞은 변화를 추진하려는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마치 '이지메'를 가하는 듯한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 헐뜯기식(?) 공격에 분노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분노'는 하지만 '여유'를 잃지 않기를 대통령에게 바라는 국민의 기대는 지나친 것일까?

권위만 내세우는 근엄한 대통령, 총과 칼로 입을 막는 대통령, 대통령의 자리를 신성불가침의 자리로 생각하는 대통령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 이상 여론과 대중의 목소리는 더 크게 울려퍼질 것이고, 옳고 그름을 떠나 국가 지도자가 수많은 다양한 목소리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보여준 유머와 위트의 리더십을 묶어 이 책에 소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랜 민주주의 전통 탓에 미국의 정치무대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목소리들의 치열한 싸움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의 유머와 위트는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난처한 정치적 상황을 피하거나 정적의 예봉을 피하는, 또는 정적을 단번에 궁지로 몰아넣는 효과적 수단으로 작용한다.

#1

22대와 24대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 그는 대선 때 상대편이 자신의 스캔들을 들추자 참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관한 사실을 모두 밝히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참모들이 상대편의 뒷조사한 서류를 가지고 왔을 때는 모두 불태워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는 불타는 서류를 직접 지켜보면서 담담하고 뿌듯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전에서 추잡한 일들은 모두 상대방이 독점하도록 놔두세."

#2

케네디의 아버지 조셉 케네디는 밀주로 치부한 뒤 나중에 돈으로 영국대사 자리를 샀다. 민주당 내에서 대권을 바라보는 존 F. 케네디는 이에 대한 당내 반감으로 곤경에 처했다. 케네디는 어느 날 민주당 열성당원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올해 초 내가 만일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사를 임명할 때 경륜있는 사람 대신 선거기부금을 많이 낸 사람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한 이후로 나는 아버지로부터 단 1센트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3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감기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때 워싱턴포스트는 '여자와 동침한 루스벨트'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감기 'Cold'를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대생이라는 뜻의 'Coed'로 잘못 써서 생겨난 해프닝이었다. 백악관은 발칵 뒤집혔고, 잘못된 신문을 모두 수거했지만 신문사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신문사로 전화 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입니다. 초판 100부를 보내주시오.……내 친구 모두에게 한 부씩 돌리고 싶습니다."

이 관대함이 가득한 꾸지람에 워싱턴포스트는 더욱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에 신경을 쓰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의 일화에서 보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그들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때론 혼란스럽고 때론 괴롭고 때론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 했던 유쾌하고 인간적인 모습은 우리 지도자들이 마땅히 배워야 할 점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440면. 1만 3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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