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책을 읽는다)'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게르만신화는 여러 면에서 그리스신화와 차이를 보인다. 그리스신화가 관념적, 추상적, 안정적이라면 게르만신화는 거대함과 폭력의 미학, 그리고 세계의 몰락을 그리며, 거칠고 직접적이며 신들의 삶조차 불안정하고 자주 모순된 상황들 속에 놓인다.

바그너는 독일 통일과정을 지켜보았으며 비스마르크시대 제국의 번영기를 누렸던 사람이다. 그는 당대 유럽의 온갖 정신적 사조들, 이를테면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유물론, 낭만파의 유산, 민족주의 등을 받아들였으며 쇼펜하우어에도 탐닉했다. 그는 당대의 사조들을 거의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게르만신화와 중세전설에 주목하게 됐다. '니벨룽겐의 반지', '탄호이저', '로엔그린' 등 그의 오페라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거의 실존인물들이며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민족의 위대한 과거를 재현해 보여주고자 했다.

히틀러는 12세 때 '로엔그린'을 본 후 바그너의 숭배자가 됐다. 바그너에게서 몰락을 갈망하는 낭만적 데카당스 정신을 물려받았으며, 정치적 행사마다 바그너의 제의적 연출방식을 철저히 수용했다. 반복되는 구호와 열기를 통해 청중의 사고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켰으며, 집회가 끝난 후에도 광신적 일체감으로 사람들을 다시 집회장으로 불러들였다.

특히 오페라 '탄호이저'중 '순례자의 합창'은 나치의 국가로 불릴 만큼 선전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화나 예술에서 표현되었던 몰락의 방향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는 환상과 예술, 현실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전쟁이 패배로 기울자 유태인 학살명령인 '최종해결'을 지시했고, 독일 국민 대부분이 동참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19세기에 이미 최고의 예술적·지적 수준에 도달했던 문명국가의 국민들이 어떻게 이런 엄청난 학살행위에 가담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1차 대전 후 혼란한 시기,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독일 국민의 열망 때문이었다. '민족 지도자'를 향한 갈망이 게르만신화의 영웅의 모습과 결합되었으리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오랜 세월을 두고 독일민족은 유럽 역사의 피해자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가해자의 모습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독일인들의 민족주의는 게르만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바그너는 예술로 응집시켰으며, 히틀러는 이를 이념으로서 실현시켰다. 게르만신화와 바그너, 히틀러의 연관성은 한 민족의 묵은 그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사에 끔직한 상처를 만들어 내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따뜻한 봄날, '탄호이저 서곡'을 들으며 안인희의 '게르만신화·바그너·히틀러'를 읽는다. 왜곡된 민족주의, 불멸의 예술, 위대한 지도자의 길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서영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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