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우리 사회 음주문화의 한 풍속도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대구시내에서 대리운전에 종사하는 사람만도 줄잡아 5천여 명에 이른다. 대리운전업체는 700여 개나 되고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시민은 하루 약 2만여 명. 우리 생활속으로 깊숙이 들어 온 '대리운전의 세계'로 기자가 직접 뛰어들었다.
대리운전에 특별한 자격은 없다. 신체 건강한 26세 이상의 남녀로 1종보통 이상의 운전면허가 있으면 된다. 대구지역의 대리운전 업체인 '대구사랑'을 찾았다. 대리운전보험(자동차취급업자보험) 가입과 PDA구입부터 요구했다. 보험에는 대리운전업자 특별약관이라는 특약이 부가됐다. 2시간여에 걸쳐 권중택 실장으로부터 (PDA기에 뜨는) '콜(call)'을 찍어서 대리운전을 수행하는 방법을 듣고 친절교육도 받았다.
자정부터 보험이 적용이 되기 때문에 한 시간여 동안 경력 3년의 권오균 지사장과 함께 현장실습에 나섰다. 반월당으로 나갔다. 오후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PDA의 '온'스위치를 넣자 반경 2km 이내에서 40여 건의 콜이 뜬다. 2인1조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 2km도 가능하지만 혼자일 경우 1km 이내가 적당하다. 콜을 잡아채기까지는 요령이 필요했다. 권 지사장은 어렵지않게 약전골목 입구의 콜을 잡았다. 그는 몇 분 후 전화를 걸어 5분내에 도착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는 그의 승용차로 대리운전 차량의 뒤를 따라갔다. 동대구역에 도착한 후 파티마병원으로 위치설정을 바꿨다. 10여분 만에 칠성시장 부근 '신뉴욕' 콜을 잡았다. 경산까지다. 요금은 1만 8천원. 콜비 3천원을 감안하면 2콜과 맞먹는다. 여전히 권 지사장이 대리운전에 나섰다. 오전1시까지는 PDA에 고객의 행선지가 뜨지 않는다. 그래서 콜을 선택하는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경산 삼풍까지는 멀었고 도로 곳곳에 숨어있는 과속단속기를 피하는 것도 요령이다. 과속딱지라도 날아오면 대리기사가 물어야 한다. 경산에서 시내로 나오는 콜을 따기는 하늘의 별따기. 빨리 대구 수성구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시지 쪽으로 위치를 바꿔 나오던 중 남부정류장 콜을 잡았다. 자정이 지났다.
생애 첫 대리운전에 나섰다. 비상등을 켠 채 기다리는 고객에게 다가가 호흡을 가다듬고 대리운전 기사라고 밝히고 키를 받았다. 대학교 직원인 30대 고객에게 '초보 대리기사'라고 밝히고 양해를 구했다. 행선지는 앞산네거리. 시내방향이라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다. 골목 안까지 들어갔다. 무사히 첫 대리운전을 마치고 1만원을 받았다. 등뒤로 진땀이 흘러내렸다.
삼각지로터리 쪽으로 가던 중 '동산병원'에서 콜이 떴다. 행선지는 지산동. 신형 그랜저TG 차량이다. 발로 밟아푸는 '사이드 브레이크'부터 서툴렀다. 장례식장에서 얼마나 마셨는지 대취한 고객은 행선지를 간단하게 말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물었더니 '니 맘대로 가라.'는 핀잔만 들었다. 난감했다. 자제력이 필요했다. 가까운 인척이 상을 당했는지 간간이 훌쩍거렸다. 지산동에 도착, 조심스럽게 깨워서 안내를 받았다.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주차하지 않았다고 신경질까지 부렸다. 다시 들안길 콜을 잡았다. 용산동이 행선지다. 거리는 다소 멀지만 신천대로를 따라가는 길은 비교적 편하다. 네비게이터의 도움을 받았다.
어느 새 오전 3시가 넘었다.
용산동에서는 대리기사들을 위해 업체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커버버스'를 기다렸다. 0시30분부터 오전 4시30분까지 성서와 경산 등 시외곽과 도심을 운행하는 버스는 대리기사들의 발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던 한 50대 대리기사는 오늘 6건을 했다며 다음 콜을 기다렸다. 아직 1시간은 더 일할 시간이다.
비가 촉촉히 내린 28일 기자 혼자 나섰다. 오후 9시30분. 홈에버 건너편 한 식당에서 콜이 왔다. 뛰어서 업소에 도착했다. 식당 밖에 나와서 기다리던 고객은 열쇠를 건넸고 이틀째라 익숙하게 시동을 걸었다. 앞산 대덕식당 옆 술집에 도착했다. 그사이 빗줄기가 약해졌다. 남대구전화국 쪽으로 10여분 걸어내려오면서 PDA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대명중학교 콜을 잡았다. 직선거리로는 800m.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위해 뛰어가면서 전화했다. 대리기사는 절대 택시를 타지않는다. 3천 원의 '콜비'를 제하면 7천 원이다. 택시를 타면 손에 들어오는 돈이 5천 원도 되지않는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상인초교 부근 아파트가 행선지였다. 아차하는 순간, 송현주공3단지콜을 잘못 잡았다. 2km나 떨어진 곳이다. 별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유천 포스코아파트까지 가는 길은 안내를 부탁했다. 그나마 덜 취한 고객을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오늘도 대리기사들은 시내 전역에서 술마시는 운전자를 기다린다. 매일 시내 곳곳에서는 음주단속이 이뤄질 것이다. 음주운전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대리기사들은 뛰고 또 뛸 것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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