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조선시대 산수화-아름다운 필묵의 정신사

조선시대 산수화-아름다운 필묵의 정신사/ 고연희 지음/ 돌베개 펴냄

'산수화(山水畵)'는 말 그대로 '산수(山水)', 즉 산과 물로 대변되는 자연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현존하는 자료나 사료를 봤을 때 조선시대에 널리 그려지고 완상된 미술이다. 세월의 흔적에 따라 색이 바랜 종이나 비단 위로 펼쳐진 속세와 다른 비경(秘境)에 우리는 절로 감탄을 한다. 지은이는 "거대하거나 아득한 산수, 그 속을 잊은 듯 하염없이 앉은 어부, 묵묵히 짐을 나르거나 차를 끓이는 동자들……. 젊음의 열기나 고뇌의 무게는 완전히 삭제된 인위적 가상공간이 아닌가."라며 감탄한 뒤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산수 이미지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도록 제작되며 감상됐을까.',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 입장으로 이들을 감상하고 이해해야 하나.', '시대에 따른 산수 표현에 변화가 있다면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산수화의 기본 이미지는 중국과 한국이 공유한 세계였을까.', '차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또 무슨 의미였을까.' 등이다.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책은 산수화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개설서가 됐다.

그렇기에 지은이는 산수화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 풀이한다. 기존의 회화사 서적이 표현의 '형식'을 중요시한 것을 넘어 그 밑에 숨어 있는 '내용'을 들추어 말한다. '어떠한 대상이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오늘날의 철학이나 과학 논리를 바탕으로 했다. 지은이는 "산수화들은…사실 자연 그 자체를 그린 그림이 아니며, 나아가 자연 대상을 그리려고 의도한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고 단정한다. "그 당시 산수화를 소유하고 향유한 문사(文士)들의 생각과 산수화 속 산수 이미지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이 내용은 일반 개설서의 형태를 그대로 따른다. 1부에서 산수화 발생에 대한 사상적·회화사적 배경과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본 뒤, 2장부터는 여말선초부터 조선 후기의 민화까지 역사적 전개에 따라 산수화를 산수 이념 및 그 기저의 사상과 사회상, 동시대 산수 문학에 드러난 당대인의 미학 등 여러모로 해부한다.

지은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는 '유가'적 사고에 기초한 이상적인 산수가 그려졌다. 안견이 그렸다는 '몽유도원도'는 대표적. 이 작품 속에는 "모두 당시 문인들이 '산수'에 기대하는 본질적인 덕성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조선시대 중기로 가면 거친 산세 속에서 은일(隱逸)하는 옛 현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작품이 탄생됐다. 굴원(屈原)의 일화에서 연원한 '탁족도', 이태백의 시 '여산관폭(廬山觀瀑)'에서 유래했다는 '관폭도' 등을 예로 든다.

다음 시기는 '진경산수화'가 탄생한, 개인의 경험과 정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산수화 시대였다. 이때에는 금강산을 비롯한 우리 산천이 그림 속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19세기 최초로 '그림'을 조형세계로 인식하고 수묵의 묘를 통해 높은 정신세계를 추구한 작품을 넘어, 그 이후 서민의 꿈과 소망을 세속적으로 표현한 민화산수도까지 '산수'는 조선시대 회화에서 시기별로 그 형태와 성격을 달리하며 다양하고 풍족한 회화세계를 형성했다.

지은이의 독자적인 시각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진경산수화'에 대한 해석이다. 이제껏 학계에서는 진경산수화가 극단적인 자주의식의 발로로 창조된 독창적인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우리 산천을 자각하고 추구한 현상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에 대해 '중국 화보의 표현을 보다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산천의 표현에 맞게 변화하고 개발했다.'고 보다 객관적으로 해석한다. '조선의 문인들이 스스로 유람하고 거주했던 공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즐기고자 했던 욕구가 낳은 현상'이란 것이다.

회화의 흐름 역시 단속적이라기보다는 연속적인 선상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임을 감안하면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지은이의 해석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384쪽. 2만 3천 원.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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