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마당) "공공기업·거대자본에 희생된 우리 주유소"

섬유업을 하면서 세금 한푼 연체 없이 냈고 외아들 키워 군에 보낸, 회갑을 맞은 평범한 주부다. 정부에서 땅 달라면 땅 주고(기부채납) 돈 달라면 돈 주며(농지 전용부담금 등) 지하철공사로 사업장 신축이 지연되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억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일본에 있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직물공장을 운영하다 경기가 좋지 않아, 1988년 대구시 동구 율하동에 주유소 지을 땅을 샀다. 국가에서 석유 저장시설을 늘리는 정책에 따라 민간인 주유소 허가조건을 완화해 준 덕분에 석유판매허가를 받아(1993년) 주유소를 신축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유소 신축공사가 절반가량이나 진척되었을 무렵, 지하철공사가 시작되었고, 주유소 신축은 오랜 기간 중단되었다. 지하철이 완공되고 공사를 재개하니 주유소 앞 노면이 마당보다 높아져 시설물 높이를 수정·보완해야 했으며, 석유판매시설도 부식과 파손으로 전면 보강·수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상속분을 투입해 주유소 주변의 땅을 높은 가격에 더 매입했다. 35년간 운영하던 직물공장을 처분하고 나니 주유소가 마지막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주유소야말로 신축기간에 IMF를 겪어야 했고, 지하철 공사기간을 보내면서 7년 8개월간의 세월 위에 피와 땀으로 이룬 우리 가족의 마지막 사업장이었다.

주유소는 개발중심지도 아니요, 소위 말하는 '알박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주유소 일대에 율하 1지구 택지개발 사업이 시행되면서 주유소 부지는 상업지역에 편입돼 헐값으로 수용되고 말았다. 시행사의 땅장사 놀음에 희생물이 된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 신축한 편의시설인 주유소는 수용되었는데, 그 옆에 있는 낡은 자동차상사는 왜 제외되었는가라는 것이다. 상업지역 6천600여 평을 통째로 입안해서 대형유통업체에 팔아넘긴 것도 그렇지만, 통상 개발지구의 상업지역은 3%인데도 이곳은 7%나 설정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렇게 하면 수익성이 월등해져 감정가를 높일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숨어있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이 복마전에 우리 주유소가 편입된 것이다. 율하지구 택지개발사업권을 이양받은 토지개발공사가 수용한 주유소 땅을 보상가의 3배에 가까운 값에 팔아 폭리를 취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야말로 '법은 가진 자의 이익'인가? 우리 가족의 마지막 삶의 터전은 대형유통업체와 시행사, 행정기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나는 주유소 부지의 헐값 수용을 인정할 수 없다. 일본에서 살았던 아버지의 말씀처럼 서민의 사업장을 갈취해 허울 좋은 공공기업과 거대자본의 재물로 삼은 행위는 일제 식민시대의 수법과 도대체 다를 게 무엇인가.

조영순(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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