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대구 복현초교 2학년 영어수업 시간. '잉글리시 존(English Zone)' 이라고 쓰인 다목적 교실의 문을 열자 30여 명의 학생들이 금발머리 원어민 교사의 손짓에 맞춰 영어 인사말을 배우느라 한창이었다. 한국인 담임교사도 교과서를 펴놓고 수업을 돕고 있었다. 학생들은 "굿 모닝 맘", "굿 나잇 맘"을 따라 말하다가 손을 번쩍 들기도 했다. "미스 클로슨!" 하며 선생님을 부르는 아이의 표정은 장난기와 친근함으로 가득했다. 소극적인 태도의 아이들도 제법 잘 따라 말했다. 지루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호주인 원어민 교사 클로슨(Clawsen·30·여) 씨는 "한국 어린이들은 매우 공손하며, 쉽고 즐겁게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 멜버른 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본에서도 초등 원어민 강사로 활동한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다.
▲초등 1, 2학년 영어 실험대 오르다
현재 전국 50개 초등학교 1, 2학년 교실에서 영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현재 초등 3학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초등 영어 수업의 조기 교육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선정한 연구학교들이다. 대구에서는 총 20개 학교가 연구학교 공모에 지원해 그 가운데 복현, 경운, 화동초교가 선발됐다. 이들은 교육부와 대구시 교육청으로부터 학교별로 1억여 원의 재정 지원과 원어민 교사 배치라는 배려 속에 지난해 9월 이후 반 년째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이필숙 복현초교 영어전담교사는 "우리말도 서툰 1, 2학년생들에게 영어가 웬말이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일주일 40분 영어 수업이 국어를 익히는 데 큰 악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기 영어교육을 둘러싼 시행 초기의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장 분위기는 한껏 고무돼 있었다.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취지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복현초교가 1, 2학년생 410명의 영어학습 실태를 조사한 결과, 영어공부를 처음 시작한 나이로 10명 중 4명이 8세와 9세를 꼽았다. 영어학원, 영어학습지 구독이 절대적이었다. 초등 1, 2학년은 물론이고 유치원에서도 영어교육이 보편화된 판에 학교 영어의 출발선을 3학년으로만 고집하면 너무 늦은 것이다.
▲어떻게 수업하고 있나
그렇다면 이들 학교에서는 1, 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수업하고 있을까? 수업시수(1시간)가 같고 놀이·체험 위주의 교육 내용도 비슷하지만, 3개 연구학교마다 실험 주제는 조금씩 다르다.
먼저 경운초교는 '지도교사 유형별 수업 비교'를 중심으로 원어민 교사, 한국인 영어전담교사, 담임교사의 영어수업 성취도를 분석하고 있다. 신선혜 경운초교 교사는 "고학년은 원어민, 전담교사가 효과적이었고 저학년일수록 담임교사가 안정적으로 수업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며 "영어 수업에 학생들의 호응도가 높고 원어민 교사 수업에 대한 인기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 이 학교는 도서관, 레스토랑, 은행, 슈퍼마켓 등 회화연습을 위한 상황별 체험학습실을 마련했다.
복현초교는 영어체험학습시설 운영이 영어 성취도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연구하고 있다. 이 학교 경우 교내 2개 잉글리시 존에 경찰서, 우체국, 병원, 여행사 등을 설치해 학생들이 영어권 국가에 갔을 때 흔히 쓰게 되는 회화를 연습하도록 하고 있다. 이필숙 교사는 "지난해 영어전담교사 2명을 뽑는데 13명이 지원했을 정도로 학교 전체에 영어 열기가 높다."며 "교사들도 조기 영어교육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화동초교는 다양한 영어 학습 자료 개발이 주제다. 화동초교는 2개 학교와 함께 지난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학생용, 교사용 공통교재를 마련했다. 3, 4학년 영어교과서에서 기본적인 내용을 발췌·재편성하고 삽화를 새로 그려넣었다. 장경희 교사는 "영어동요, 가면놀이, 주사위 게임 등 듣고 말하고 몸을 움직이는 요소들로 구성했다."며 "교재 내용을 CD로 제작하는 것이 남은 숙제"라고 했다.
▲학교 조기 영어교육 잘 되려면
초등 1, 2학년 영어 수업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교육부도 학부모 설문조사를 근거로 조기 영어 교육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여러가지 보완책을 주문하고 있다. 박영예 대구교대 교수(영어교육학과장)는 "우리나라 어린이 영어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1학년부터냐 3학년부터냐가 아니라 충분한 수업시간을 확보하느냐가 문제"라며 "언어학습은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주당 1시간 수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1학년부터 조기 영어교육이 이뤄지면 유치원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조급증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 영어 교육과정의 연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도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3, 4, 5학년의 영어 교육과정이 영어에 대한 흥미와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6학년에 올라가면 갑자기 쓰기, 읽기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 박 교수는 "6학년생 가운데 알파벳도 쓰지 못해 '영어 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어능력의 격차가 크다."며 "초등 영어교육은 수도권이나 대구 수성구처럼 일부 지역 학생들의 수준만 가지고 내용과 수준을 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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