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제주도 4·3 항쟁

1948년 4월 3일 발생,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미군정의 강압에 맞서 인민항쟁이 일어났다. 당시 단독선거 반대 투쟁에 나선 제주도민들은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의 무차별 테러로 주민들의 분노가 고조된 상태에서 결국 무장충돌로 이어져 이를 피해 한라산으로 근거지를 옮기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의 김달삼이 주도, 무장전위대인 '자위대' 500여 명과 그 동조자 1천여 명은 도내 10여 개의 경찰지서를 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경찰과 서북청년단 및 국민회, 독립촉성회,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의 요인과 관공리의 집을 공격했다. 미군정청은 9연대에 진압을 명령하고 타 도에서 차출한 1천700여 명의 경찰도 파견한다. 또 제9연대장 김익렬의 강경 진압 거부로 유격대와의 협상 결과 72시간 내 전투중지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 군정청은 평화협상을 거부하였고 김익렬을 해임하고 강경파인 박진경을 기용하여 강경 작전을 준비했다. 이에 대해 유격대와 제주도민들은 5·10 총선거 거부 투쟁을 시작, 제주도에서 3개 선거구 중 두 곳이 무효가 됐다. 이에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는 1949년 3월 2일 총공세를 감행, 한 달 동안 2천345명의 유격대가 사상하였고 1천608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 파병을 거부하는 여순반란 사건이 일어났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92년 소설가 이병주 사망

정보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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