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빚었던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올 9월부터 전국 모든 신규 분양 아파트에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다.
99년 민간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가 시행된 지 8년여 만에 다시 분양가를 정부나 지자체가 통제하는 '원가 연동제' 시절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분양가 상한제 실시로 최근 몇 년간 제품 고급화 등을 내세워 '고 분양가' 경쟁을 벌였던 주택 시장은 '큰틀'에서 '새판 짜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수요자는 그대로 있지만 분양 가격은 물론 공급자나 유통 경로 등에서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업체들은 "당장 시공사나 시행사로서는 사업 진행이 불투명해질 정도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내년 이후 분양 단지는 분양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지만 '상한제 가격'에 맞출 수 있는 아파트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여 공급량은 줄어들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상한제 골자
분양가 상한제는 말 그대로 아파트 분양에 따른 원가 산정을 해 '최고 가격' 이상은 분양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대상은 전국 모든 민간·공공 아파트며 분양원가 공개 대상은 '수도권 및 대통령이 정하는 분양가 상승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 한정됐다. 대구 등 지방 대도시는 일단 원가 공개 대상에서는 빠질 것으로 보이지만 건설업체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는 만큼 원가 공개 제외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선 분양가 구성은 택지비와 기본형 건축비, 가산 비용으로 구성된다. 주택법 개정에서 최대 논란이 됐던 부분은 택지비로, 주택법 개정으로 택지비 산정 기준은 매입가가 아닌 감정가며 ▷경매·공매 ▷공공기관의 입찰 낙찰가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는 예외가 인정된다.
대경의 최동욱 대표는 "현재 분양되는 아파트의 실제 매입가격은 감정가 대비 50~80% 수준에 불과해 감정가로 택지비를 산정하면 현재까지 민간 택지 공급을 도맡아 왔던 시행사들의 부지 매입이 불가능해진다."며 "알박기 등에 대한 강제 매수권 행사가 쉬워졌지만 현실적으로 감정가 기준으로 택지 매입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택법 개정안 시행 규칙 등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택지비 감정 기준일을 부지 매입 시점으로 할지 분양 시점으로 잡을지도 향후 논란거리 중 하나다.
기본형 건축비는 현재 정부가 공공택지 등에 제시하고 있는 건축비를 적용해보면 평당 350만 원 선. 33평형의 경우 공유면적 등을 합치게 되면 공사면적이 45평 정도로 늘어나게 되며 현재 시공사들의 도급 단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기본형 건축비는 정부 제시안에다 지자체가 물가 등을 고려해 일부 조정이 가능하지만 현 기본형 건축비에도 '거품' 주장이 일고 있어 향후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한라주택 최원근 상무는 "기본형 건축비가 낮아지고 전 단지에 획일적으로 공사비가 책정되면 향후 차별화된 아파트는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결국은 주택업체들이 제품 질 경쟁보다는 단가 인하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상한제 시행에 앞서 분양가 심사위원회가 구성되며 위원회는 주택 관련 분야 교수나 주택건설분야 전문직 종사자, 관계 공무원 등 관련 전문가 10인 이내로 구성토록 법에 명시돼 있다.
◆시행 시기 및 분양 가격
정부가 밝힌 시행시기는 9월부터지만 올 8월 말까지 사업승인 신청을 하고 11월 말까지 분양승인 신청을 하는 아파트는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현재도 적용대상인 공공택지를 뺀 민간 택지의 '상한제 적용 대상 아파트'는 내년부터 본격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건교부는 상한제 실시를 위해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을 3개월 이내에 마무리할 계획이며 기본형 건축비 산정과 세부시행 지침 마련,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에 대한 교육 등도 7월까지는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분양 가격은 현재보다는 10% 이상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분양대행사 장백의 박영곤 대표는 "택지비를 감정가로 산정하고 건축비까지 정부안대로 적용한다면 수도권 등 택지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은 분양 가격이 20% 이상 떨어질 수도 있다."며 "하지만 지방은 10~20% 정도 가격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존 주택에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
'고 분양가' 행진을 막는 것은 확실하지만 2000년 이전 분양된 기존 주택의 평균 가격이 신규 분양 가격의 50~70% 선에 머물고 있고 상대적으로 입주 임박 단지들도 가격이 크게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건설업계는 보고 있다.
SD 건설의 금용필 이사는 "택지비를 감정가로 적용하면 저렴한 땅을 찾을 수밖에 없어 향후 등장할 단지는 올해 분양한 단지보다 입지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건축비까지 통제를 받으면 마감재 질도 현행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워 기존 단지와 가격 경쟁력을 단순 비교하기는 애매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향후 시장 전망
앞으로 부동산 시장은 당분간 확실한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이후 이어진 분양가 '고공행진'이나 10%대에 이르던 기존 주택 가격의 상승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 특히 양도세 중과와 실거래가 적용 등으로 크게 위축된 주택 거래량은 '가격 하락 심리'까지 겹치면서 한동안 더욱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주택법 개정안이 처리됨에 따라 '시장 불확실성'이 사라진 만큼 '악재 속에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법 개정안에 따라 정부 주장처럼 선호도가 높은 지역에 20% 이상 '값 내린 아파트'가 등장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며 "차라리 개정 주택법이 시장에 미치는 결과가 빨리 드러날수록 '관망세 시장'에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한 매수세가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건설사들은 '공급 위축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감정가로 택지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어려워 내년 상반기 이후로는 신규 공급 물량이 50% 이상 줄어들 것이란 논리다.
건설사들은 "이미 상당수 부지에서 땅 매입 작업이 중단된 상태며 앞으로는 공공 택지가 아닌 민간 택지를 대상으로 부지 확보에 나서는 시행사나 시공사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공공 택지도 대부분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어 입지가 양호한 도심지 내 신규 공급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협 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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