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나도 기자-몽타주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구지방경찰청 과학 수사계 노주형 경사(36)입니다. 노 경사는 1996년 경찰에 입문, 외근 형사생활 중 거짓말 탐지기 교육과 몽타주 교육을 받고 2003년부터 과학수사계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최면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몽타주 작성과 거짓말 탐지 등이 그의 주요 임무입니다. 1년 평균 35건 정도의 몽타주를 작성합니다. 노 경사는 과학수사관인 만큼 잦은 세미나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서 응용합니다. 외근 형사시절에도 편안한 외모 덕분에 상대의 의심을 받지 않고 여러 가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몽타주 작성은 최면을 통해 목격자나 피해자의 진술을 얻어야 하는 만큼 피해자나 목격자의 이해와 협조가 절실한 분야입니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과 낮은 목소리 덕분에 노 경사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협조를 얻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대구지방 경찰청에는 현재 노주형 경사 외에 북부 경찰서 서용석 경사가 몽타주를 그립니다. 노주형 경사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내기 힘든 특이한 외모를 가진 용의자의 경우 서용석 경사에게 도움을 요청, 손으로 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 노주형 시민기자(대구지방경찰청 과학 수사계 경사)
대낮에 길을 걷다가 강도사건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강도의 얼굴을 똑똑히 봤고 고함소리도 들었다. 5분쯤 후에 강도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워낙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 기억하기 어렵다고 하자. 그러면 정문 경비원이 배치된 큰 건물에 들어서다가 경비원의 제지를 받았다고 하자. 방문목적을 밝히고, 안내를 듣고 신분증까지 맡겼다. 5분쯤 후에 경비원의 얼굴을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물론 다시 만난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지 않고, 경찰관 앞에서 그 인물의 인상착의를 또렷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지어 강도가 안경을 썼는지, 눈이 큰지 작은지, 어떤 색깔의 옷을 입었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정문 경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자를 썼다면 어떤 모자를 썼는지, 제복의 명찰은 어느 쪽 가슴에 붙었는지 기억하기도 어렵다. 뺑소니 순간을 목격하고 자동차 넘버를 외웠다가도 1,2분이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형사사건에서 몽타주는 이처럼 짧은 순간 눈앞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사람을 기억해내도록 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건 해결을 위해 몽타주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많다. 그래서 경찰은 목격자나 피해자와 함께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10시간 가까운 작업을 통해 몽타주를 작성한다. 경찰 몽타주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몽타주 작성은 범죄 용의자를 상대하는 게 아니다. 범죄 피해자나 목격자를 대상으로 진술을 얻어내는 작업이라 '가슴속 상처'를 재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 목격자들은 웬만해서는 목격한 사실 진술을 꺼린다. 몇 시간씩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복수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신분보장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당사자에게 그 같은 신뢰를 심어주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또 단순 목격자의 경우 범인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해낼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협조'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범죄 피해자들은 비교적 용의자의 얼굴을 명확히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해자의 진술을 받아내는 일은 어렵다. 강도 사건이나 강간 사건의 끔찍한 장면을 다시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격자와 피해자에게 사건해결을 위해 협조가 꼭 필요하다는 충분한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몽타주 작성의 출발이다.
◇ 법최면을 통한 현장 확인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사건 현장의 목격자나 피해 당사자가 범인의 얼굴과 복장을 명확히 기억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용하는 방법이 법최면이다. 최면을 이용하면 자신의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 혹은 자신의 의식이 왜곡해서 기억하는 부분까지 사실대로 기억해낼 수 있다. 무의식의 영역에 당시의 상황이 필름처럼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이 무의식의 기록을 의식세계로 끄집어내는데 이용하는 방법이 법최면이다.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데는 특별한 약물이나 전기적인 충격이 필요하지 않다. 편안한 공간과 시간, 편안한 마음과 전문적인 유도작업이 어우러지면 가능하다.
최면 유도방법에는 수세기 기법, 신체 이완기법, 상상법, 엘리베이트 기법, 계단기법 등이 있다. 각 단계를 통해 점점 더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다가가는 것이다.
전문교육을 받은 경찰관의 유도를 통해 목격자나 피해자는 최면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손에는 경찰관이 쥐어준 가상의 리모콘이 있다. 이 가상 리모콘을 통해 과거의 특정한 장면 속으로 빨리 이동할 수 있고, 재생도 가능하다. 또한 특정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물론 전문 경찰관이 이런 모든 작업을 이끌어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장면까지 고스란히 확인하고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강도사건이나 강간사건의 피해자의 경우 최면상태에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공포에 떨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특히 강간사건 피해 여성의 경우 그런 현상이 잦다. 최면상태에서 강간사건 피해자는 가해자의 목소리와 말투, 담배냄새와 몸의 악취까지 또렷하게 기억해낸다.
최면상태에서 피해자가 당시 장면을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되면 그 장면을 의식상태에서도 기억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잘 보세요. 보입니까? 이제 기억합니다.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기억합니다."
경찰의 유도에 최면상태에 빠진 피해자는 "네, 기억합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최면상태에서 깨어나도 그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부터 컴퓨터를 이용한 몽타주 그리기 작업이 시작된다.
사람에 따라 10분 혹은 20분만에 최면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2시간 혹은 3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최면유도는 개인의 직업, 성향에 따라 크게 차이를 보인다. 최면 유도자의 말에 잘 따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최면상태로 유도하기 매우 어렵다. 실험을 통해 경찰들은 최면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상대를 의심하고, 분석하고, 말투를 관찰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최면상태에 빠지려면 유도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에 따라야 한다. 그 말을 분석하거나 꼬투리를 잡으려는 마음을 가지면 최면상태에 이르지 못한다. 최면상태에 이르지 못하면 무의식이 기억하는 것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피해자나 목격자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몽타주 그리기
최면상태를 통해 사건현장을 다시 확인한 후에는 몽타주 그리기 작업에 돌입한다. 우선 얼굴형을 결정한다. 둥근 얼굴인가, 사각형 혹은 삼각형인가? 길쭉한가 마름모형인가 등등. 얼굴 형태를 결정하고 나면 머리카락 형태를 결정한다. 그 다음은 눈썹과 눈, 코, 입, 귀 등이다.
목격자와 경찰관이 함께 용의자와 일치하는 얼굴형과 이목구비를 찾아간다. 그리고 진술자가 가장 가깝다고 말하는 얼굴 각 부위를 조합해서 한 사람의 얼굴을 만든다. 1,2시간 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몽타주 속 인물이 목격자가 직접 본 용의자와 일치할 경우 작업은 쉽게 끝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를 경우다. 눈 코 입, 얼굴 모양, 머리카락 모양은 분명히 일치하는데, 조합해놓고 보면 다른 얼굴인 경우가 많다.
"눈 코 입 얼굴 모양 다 맞아요. 그런데 이 사람 아닌데요?"
"어디가 다른가요?"
"……."
속된 말로 환장하는 경우다. 이목구비는 일치하는 데 얼굴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무척 많다. 사람 얼굴에는 이목구비와 얼굴모양 외에 이미지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인물을 두고 사진을 찍어도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서로 다른 이미지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강행군이다. 4,5시간은 기본이고, 그보다 더 오래 끄는 경우도 많다. 컴퓨터 앞에 목격자와 나란히 앉아 씨름하다보면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한다. 컴퓨터의 몽타주 프로그램에 나타난 인물과 목격자가 진술한 인물 사이의 차이점이 경찰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목격자가 확인했지만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인물의 이미지가 경찰관의 머릿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더욱 세심한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아, 이 사람 맞아요!"라는 목격자의 대답을 듣는다. 드디어 몽타주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 몽타주 얼마나 정확한가
몽타주를 바탕으로 탐문수사에 나설 경우 '전혀 모르겠다.'는 경우도 있지만 단번에 '어, 누구 닮았네?'라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용의자를 검거한 후 사진을 찍어 몽타주와 비교해보면 '판박이'인 경우도 있다. 물론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목구비는 같은데, 동일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제 인물과 몽타주 사이에 이미지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몽타주로 작성한 것을 실제 인물과 비교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범인이 잡혀야 비교가 가능한데, 몽타주 의뢰가 들어올 정도의 사건이면 용의자를 추측할만한 증거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범인 검거는 쉽지 않다. 용의자가 검거된 사건만 놓고 보면 몽타주와 실물이 비슷한 경우가 35%, 이미지가 비슷한 경우가 45%, 비슷하지 않은 경우가 20%쯤 된다.
몽타주가 범인 체포에 큰 도움이 됐을 때 가장 기쁘다. 목격자나 피해자의 수고와 고통, 협조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했기에 보람이 더욱 크다.
과거의 시간이라도 현재시점에서 몽타주 작성이 가능하다. 과거 진술이나 몽타주를 바탕으로 새 몽타주를 작성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얼굴을 분석하고, 샘플이 되는 인물의 나이별 변화 평균치를 형상화 한 데이트베이스가 사용된다. 남녀 각각의 샘플을 통해 일반적인 변화정보를 입력하고, 이 정보를 근거로 프로그램화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 소프트웨어 한 개 값이 6천만 원이다. 이 프로그램화된 인물들의 나이대별 변화상을 바탕으로 용의자 얼굴의 변화를 추측하는 셈이다. 현재 경찰이 보유한 몽타주 프로그램은 성별과 나이 대를 입력하기만 하면 변화된 얼굴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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