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 ⑥시인 문인수

극단적 자학, 불혹 지나 펜촉의 열정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손아귀에 꽉 꽉 구겨쥔 에이포 용지를 냅다 방구석으로 던졌다. 어, 처박힌 종이 뭉치에서 웬 관절 펴는 소리가 난다. 뿌드드드 드드 부풀어오르다, 부풀어오르다, 이내 잠잠해진다./ 종이도 죽는구나./ 그러나 입 콱 틀어막힌 그 마음의 밑바닥에 얼마나 오래 눌어붙어 붙어먹었으면, 그리고 그 무거운 절망, 기나긴 암흑의 産道를 얼마나 힘껏 빠져나왔으면 그토록 환하게/ 뼈 부러지게 기뻤을까./ 누가, 날 구겨 한번 멀리 던져다오.'(시 '꽃'의 전문)

시인 문인수(62)는 인고의 긴 시간 터널을 빠져나온 시인이다. 젊음의 방황과 긴 침묵, 그리고 마흔이 넘어 등단해 예순에 시쳇말로 '물이 오르고 있는' 시인이다. 마치 세월을 견딘 돌이 광합성 생명체의 싹을 틔웠다고 할까. 시집 '쉬'에 수록된 '꽃'은 흡사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는 평생 "자신을 쥐어박으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자해공갈단이지.(웃음)" 자책, 자괴, 자기비하, 자학 등 '자(自)'가 들어가는 말들이 돌림병처럼 둘러싼 삶이다. "나의 상처는 남이 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한테 가한 것들이지."

그는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동네 유지로 비교적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 시대 누구나 겪는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릴 적 상처라야 엄마 등에 업혀 아랫채가 다 타는 불을 본 기억 정도다. "불은 가장 뚜렷한 기억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공포의 상징이 됐어." 그는 "아직도 내 속에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하나는 물의 광기다. 성주 농고 시절 시오리 길을 걷다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 소낙비를 맞았다. "나도 모르게 광기가 발동했어." 땅을 뒹굴다 울고, 또 고함지르며 태풍에 삿대질했다. 그는 그 순간이 "심정적인 벼락이었다."고 표현했다. 불이 내면을 뒤흔든 공포였다면, 물은 바깥을 향한 열망이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초등 4년 때. 장난이 심했던 그에게 여선생님이 던진 말이다. "너는 커서 아무것도 안 되겠다." 이 말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현실과 적응하기 어려울 때마다 떠올랐다니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고2때 아버지를 졸라 대구고등학교로 전학했다. 도시의 학교는 그를 주눅 들게 하기 충분했다. "성주에서 글깨나 쓴다고 생각했는데, 대구에 와서 보니 명함도 못내겠더라고." 그러나 고3때 매일신문 학생 시원란에 작품이 실리면서 본격적인 학생문단에 진출했다. 그러나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하고, 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백수의 삶'이었다고 자책했다. 30대 후반기의 백수 시절을 제1기, 1998년 이후 지금까지의 시기를 백수 2기로 나눈다. 백수 2기야 IMF로 '국가 공인' 마크가 붙지만, 혈기왕성한 30대에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닌 백수 1기는 견디기 어려운 비애감을 느끼게 했다.

'…/ 큰 짐승의 발자국 같은 것이/ 뚜벅뚜벅 찍혀있다./ 바다의 저 끊임없는 시퍼런 활동이. 그 엄청난 수압이 느리게 자꾸 지나갔겠다./ 피멍 같다. 노숙의 저 굽은 등 안쪽의 상처는/ 상처의 눈은 그러니까 지독한 사시 아니겠느냐/…'('도다리')

'…몸을 비트는,/ 바닥을 짚고 이는 힘./ 총궐기다,/ 하다못해 욕설이다./ 무수한 가닥으로 찢어발긴, 잘게 씹어 삼킨/ 시간의 질긴 근육이다…/…너는, 너의 푸른 바다로 갔다.'('오징어')

백수1기는 심연의 수압을 견디며, 솟구치는 생명에 대한 탐구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는 41세에 심상신인상에 '능수버들' 외 4편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른바 '늦깎이 데뷔'다. 정처 없는 부유(浮游)의 생활, 자신의 눈을 찌르는 극단적 자학이 시의 항구를 찾은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시는 그에게 폭포 같은 열정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지난해 시인 서정춘을 두고 쓴 시의 창작기는 그의 열정을 잘 드러낸 에피소드다. 포항 술자리에서 만난 시인들이 서정춘 시인의 배에 그려진 배냇상처를 화제에 올렸다. 서 시인에게 "한 달 내에 형님이 시 안 쓰면 내가 쓰겠수."라고 던졌다. 그런데 시가 온몸을 스물스물 기어다녔다. 그는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야반도주하듯 대구로 와 시를 썼다.

'…/삼 短이다. 체구가 작고, 가방 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이 징그러운 흉터야 말로 몸을 두고 공전하는 기억이지 싶다, 궂은 날,/ 지금도 수천의 잔발로 간질간질간질간질 세밀하게 기면서/ 씨부럴,/ 이 썩을 놈의 슬픔이 또, 온다, 간다 …'(지네-서정춘傳)

그는 여전히 뜨겁다. "내 정신이나 몸이 다 삭기 전에는 뜨거움이 식지 않을 것 같아." 자신을 쥐어박는 자해의 감정과 글쓰기의 열망은 늘 엇갈리면서도 같이 살아왔다. 좀체 자신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 자학은 시로 승화된다. 시는 5살 때 본 불춤, 불의 혓바닥 같은 것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1945년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서 태어남. 1964년 대구고 졸업. 1986년 첫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 출간. 1990년 두 번째 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1992년 세 번째 시집 '뿔' 출간.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수상. 1999년 네 번째 시집 '홰치는 산' 출간. 2000년 제11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 다섯 번째 시집 '동강의 높은 새' 출간. 2003년 노작문학상 수상. 2006년 여섯번 째 시집 '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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