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상화 고택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 '雪國(설국)'은 "縣(현)의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고장이었다"로 시작된다. 밤기차속 시마무라의 눈 앞에 꿈처럼 펼쳐진 새하얀 눈벌판. 화사하면서도 서늘한 냉기에 독자들은 순식간에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다.

일본 니가타(新瀉)현은 '눈의 나라'다. 스키 시즌이 5월초까지 이어질 정도다. 이 지방이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데는 눈과 더불어 '설국'의 무대인 유자와(湯澤) 온천장 덕분이기도 하다. 300년쯤 된 다카항 여관의 2층, 가와바타가 여행 중 실제로 묵었던 그 방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시마무라를 좋아하던 게이샤 고마코가 기다리던 작은 방도 그 옆에 있다.

예술가의 흔적은 수많은 사람들을 부르는 흡인력이 있다. 세계 각국이 예술가의 체취가 묻은 곳을 복원'보존하려 애쓰는 것도 이때문이다. 러시아엔 알렉세이 푸슈킨의 기념관'박물관만도 전국에 20여 개가 넘을 정도다.

抗日(항일) 민족시인 李相和(이상화) 선생의 대구 계산동 古宅(고택)이 폐가나 다름없을 정도로 방치되고 있다니 가슴 아프다. 선생 탄신 106주년인 5일 이곳을 찾은 서울의 '문화유산연대' 회원들은 '민족시인 통곡한다. 냄새 진동하는 상화고택!' 이라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尙火(상화)는 우리 국민이 존경하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네번 째로 이사한 이 집에서 말년의 2년을 보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詩魂(시혼)이 어린 현장이다. 그런 문화유산이 처마도 담장도 허물어지고, 봉창문은 뜯겨나가고 벽지가 너덜거리고 있다. 이러고도 '문화도시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성공으로 모처럼 자긍심을 회복하고 있는 시민들을 낯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도시계획으로 헐릴 위기에 처했던 고택은 2002년 상화고택보존운동본부의 100만인 서명운동과 기금마련 등 갖은 노력 덕분에 겨우 살아남게 됐다. 그러나 지금껏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없다. 근처에서 헤매는 외지인들을 볼때마다 면구스럽기 짝이 없다. 이번에도 작년 9월 복원계획 발표 이후 차일피일 미루느라 문제가 불거졌다. 시가 내달에 공사를 시작, 9월경 새단장을 마칠 계획이라니 이번엔 틀림없이,확실하게, 잘 추진하기를 당부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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