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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여자로 어떻게 살았수?" '여성의 지위 읽기' 책 3권

근현대사를 건너오면서 여성들의 지위는 이중적으로 바뀌었다. 겉으로는 남성들과 다를 바 없이 자유로워졌지만 아직도 100여 년 전 여성들과 통하는 게 있으니 말이다.

'천재를 키운 여자들'(잉에 슈테판 지음, 박민정 옮김, 이룸 펴냄)은 한 시대를 이끈 천재들과 결혼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화가 막스 베크만은 아내에게 처음부터 분명하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할 것인지, 화가인 자신의 성공을 도와줄 것인지 둘 중에서 말이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역시 작곡가였던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알렸다. "이제부터 당신은 한 가지 일만 하면 되는 거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말이오. 작곡가로서의 역할은 내가 맡고, 당신은 사랑스러운 반려자와 이해심 많은 파트너가 되는 거라오." 이 얼마나 이기적인 발상인가. 화가 코코슈카는 "당신은 밤에는 마법의 묘약처럼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오. 낮에는 당신의 일을 해도 좋소."라고 애인에게 밝혔다. 이 책은 이처럼 시대와 관습의 굴레에 자신의 천재성을 묻어야 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낮에도 활보하게 된 때가 1904년 이후이니, 우리나라 여성의 자유로운 외출사는 겨우 100년 남짓하다. '신여성, 길 위에 서다'(서경석·우미영 엮음, 호미 펴냄)는 신여성 20여 명의 기행기를 담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세계를 여행한 나혜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와 백신애, 우리나라 최초의 스웨덴 유학생 최영숙 등의 수필이 당시 사회상과 더해져 감칠맛을 더한다.

1932년 최초의 스웨덴 유학생이었던 최영숙의 죽음은 당시 큰 가십거리였다. 처녀로 알고 있던 엘리트가 임신한 몸이었고 그 상대가 인도 청년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 중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스웨덴으로 향했다. 그녀는 "언어와 풍속도 다르고 아는 사람조차 없어, 한 달 동안은 밤낮으로 울었다."고 적고 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에 능통했던 그녀는 유학을 마치고 인도로 향한다. 간디, 나이두 여사와 친분을 쌓는 등 견문을 넓혔지만 귀국 후 다섯 달 만에 죽고 만다. 능력이 출중한 여성이었지만 그녀는 '튀기 아이를 임신한 여자' 정도로만 기억돼 안타까움을 더한다.

여자들의 도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자로 태어나 미친 년으로 진화하다'(이명희 지음, 열림원 펴냄)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국내외 여성 멘토 9명의 인생과 철학을 모은 인터뷰집이다. 여성문화운동 1세대 사진작가 박영숙, 여성운동가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저자가 미국 체류기간에 만났던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나이의 공식에 상관없이 살아가며 노동과 학습을 병행하는 '여전사'들이다. 이들의 삶을 저자가 '미친년'이란 화두로 묶는 것은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자신의 길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진화의 증거"라며 "어차피 미친년 소리를 들을 바에야 제대로 미쳐보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설파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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