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도시의 유목민을 그리워하며

도시인들을 가리켜 누군가가 유목민(游牧民)이라고 말했다. 집을 자주 옮기는 도시인들의 생활상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사를 했다. 십 년 만에 집을 옮기지만 이 말을 떠올리며 이사 준비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책 정리였다. 오래되고 필요하지 않은 책을 골라 버리는 것이다. 책을 버릴 때는 뒤적여 보지 않아야 한다.

책이란 것이 첫 장이라도 넘겨보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책장에 꽂게 되기 쉽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조금씩 버렸다. 전날에 버릴 책을 문 앞에 쌓아두었다가 출근 때 버리고 저녁에는 다음날 출근 때 버릴 책을 문 앞에 쌓아두곤 했다. 책도 버려지면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삿짐 정리는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다.

아내의 이사 준비도 쓰레기 버리는 일이었다. 멀쩡한 유리 그릇, 스테인리스 그릇들이 쓰레기로 버려진다. 한때는 귀한 살림살이들이었다. 살림살이나 옷가지들이 낡고 헐어서 못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용이 없어지거나 그 모양이 예스러워서 버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 중에는 아끼다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것들이 많다. 궁핍했던 지난 시절이 그 물건들에서 다시 떠오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고 했던 소유욕이 미련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이삿짐 정리는 버리는 일에서 시작되어 버리는 것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버려지는 쓰레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랐다. 심지어는 살림이라고 장만했던 것들이 너무 쉽게 쓰레기로 변하는 사실에 허망감마저 들었다. 하기야 세월이 흐르면 쓰레기가 안 되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완전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책들도 쓰레기로 버려지고 밤 새워 쓰는 한 편의 시(詩)도, 몇 년을 걸려 내놓는 시집도 언젠가 쓰레기로 버려진다. 인간의 육신조차도 결국 인간이 남길 마지막 쓰레기가 아닌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이 쓰레기를 만드는 과정이라 하겠다.

집을 옮기는 것은 도시인들의 재산증식의 보편적인 수단이다. 그러므로 잦은 이사는 자연스러운 도시생활이다. 자주 집을 옮긴다는 면에서 현대 도시인을 유목민이라 말한다면, 집을 옮기는 과정에도 유목민다운 면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초원을 찾아 떠나가는 유목민처럼 짐이 가볍고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이사, 그 경쾌한 도시의 이사 풍경을 그려본다. 그러나 현대 도시인에게서 이런 유목민의 풍모를 찾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려볼 뿐, 현실성이 없는 일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도시인들은 더욱 많은 쓰레기를 생산할 것이다. 버려진 쓰레기보다 더 많은 새로운 그 무엇으로 채울 것이다. 이삿짐도 버린 만큼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살림살이로 채울 것이고 그 살림을 무겁게 끌고 새 집으로 떠나갈 것이다.

새로 장만하는 살림살이들도 다음 이사 때는 어느새 쓰레기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버리고 채울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반복적인 이사를 통하여 도시인들은 물질적 욕구를 채워갈 것이다. 나 자신 또한 그러할 것이다.

다만 물질적 욕심을 채우는 과정에서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정도가 물신주의(物神主義)가 팽배한 현실에서 행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도시인들의 이사 풍경을 유목민의 가벼운 발걸음과 연관짓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도시인에게서 유목민의 모습을 찾는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기에 도시의 진정한 유목민이 더욱 그리운 시대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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