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상화고택의 우울한 봄

"대구 사람들 왜 이럽니까?"

문화유산연대(코리아 헤리티지)의 김난기 집행위원장의 '허탈' 섞인 말이다. 당초 이상화 시인의 탄생 106주년을 맞아 5일 상화고택(대구시 중구 계산동)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다.

서울서 20여 명의 회원이 상화고택을 찾았다가 방치된 정도가 심해 분개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그러나 대구의 여러 곳에서 "기자회견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문화유산연대는 '민족시인 통곡한다. 냄새 진동하는 상화 고택' 이란 성명서만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부산의 영도다리를 보존하려고 했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말에는 '왜 있는 것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느냐.'는 질타와 함께 기자회견까지 무산시킨 대구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났다.

기자회견을 좌절시킨 이들은 누굴까.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일부 문화인들도 가세한 것 같았다. 부끄러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우리 동네 와서 너희들이 왜 그래?"라는 폐쇄성의 발로일까.

상화고택은 대구 정신이 깃든 곳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일제에 저항한 상화 시인과 독립운동가 이상정(이상화의 친형) 장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의 고택이 나란히 자리한 곳이다. 외침에 저항하는 정신과 행동, 그리고 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대구정신의 산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신축 고층빌딩에 가려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취재 중 어떤 이는 "우리의 정신을 막기 위해 일제가 쇠 대못을 박은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원래 이곳이 도로 건설계획으로 헐릴 처지에 있었다는 점을 알면 더 기가 막힌다.

상화고택을 보면 '우리는 과연 기본에 충실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서울에서는 대구사람인 소설가 현진건이 잠깐 살았던 집도 찾아 기념하려고 하고, 인천 같은 곳에서도 일본인거리, 차이나타운 등 근대문화유산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편이다. 과연 대구는 어떨까.

지난해 대구에서 제1회 상화문학제가 열렸다. 수성못에 세운 상화시비에서 열린 추모시화전을 시작으로 세미나와 백일장, 시낭송대회를 가졌다. 분명 반가운 행사였지만 꺼림칙한 느낌을 주었다. 바로 '2006 수성들안길 맛축제'의 부대행사였던 점이다. 돼지고기 굽고, 전 부치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열린 행사는 '위대한 시인'과 '맛축제'라는 극단적 풍경으로 인해 우울한 단상을 던져주었다.

지난 2002년에는 상화고택보존운동본부가 발족돼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쳤다. 그 당시 공동대표였던 이가 현재 대구시 중구청장이 됐다. 많은 이들은 중구청이 폐허가 된 고택을 살릴 것으로 여기고 반겼다. 그러나 고택은 1년여 폐쇄된 채 인분냄새만 진동하는 도심 속 폐가로 방치됐다.

모르는 것은 '바보'지만, 알고도 모른 체하는 것은 '범죄'다. 우리는 상화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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