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착해야 오래간다"…기업들 '新 덕치주의'

주목받는 지속가능경영

일본 오츠시의 지방은행인 비와코은행. 이 은행 본점 앞에는 물통이 떡 버티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 본점 앞에는 훌륭한 조형물과 고가의 조경수가 대부분의 앞자리를 차지하지만 이 은행은 예외.

비와코은행 앞 물통은 빗물을 받을 때 이용된다. 빗물을 받아 이 통에 보관한 뒤 세차를 할 때나 나무에 물줄 때 활용한다. 빗물받이 물통 설치도 모자라 이 은행 직원들은 깡통을 들고 주변 식당의 폐식용유까지 수거하러 다닌다.

올해 65세(1942년 창립)가 되는 장수기업 비와코은행. 영업도 중요하지만, 환경경영을 통해 지역사회와 공존해야 기업이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경영이념을 갖고 있다. 이른바 '지속가능경영(SM·Sustainability Management)'.

대구경북지역 '장수기업'들도 지속가능경영에 주목하고 있다. 장사만 잘해서는 백수(白壽)를 누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마음 착한 흥부가 되라

올 가을이면 마흔 살이 되는 대구은행. 100여 년 역사의 조흥은행이 간판을 내리는 등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의 '빅뱅'이 계속됐지만 대구은행은 지난해 은행 창립 이래 최대규모인 2천405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구은행은 100년 기업을 향한 무기로 '지속가능경영'을 선택했다.

때문에 대구은행 역시 비와코은행처럼 영업 외의 '엉뚱한 일'을 많이 벌이고 있다. 기부를 통한 사회공헌은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등의 환경 목표까지 세우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도 아닌 은행이 무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속가능경영을 위해서는 비와코은행처럼 은행도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대구은행은 설명했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고효율 전기기기를 도입하는가 하면 실내온도를 떨어뜨리고, 승강기를 홀짝 층으로 나눠 운행하는 등의 노력을 폈다. 희귀식물인 울릉도 섬말나리 생태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신천에 붕어 치어 5만 마리를 방류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심사에서도 해당기업이 환경친화적 사업을 하는 곳인지를 파악, 심사점수에 반영하고 있다.

또 지난해 1년 동안에만 95억 5천만 원을 대구경북지역 사회공헌사업을 위해 내놨다. 지난해 직원들의 봉사활동 참가시간도 11만 시간을 기록, 전년에 비해 1만 시간이나 늘어났다.

이와 관련, 대구은행은 지난 5일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완성,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지속가능경영 관련 국제기구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로 발송했다. 오는 20일 안으로 등급이 나올 예정이며, A등급을 받을 것으로 대구은행은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해 9월 말 현재 GRI에 등록한 기업은 GM, 휴렛패커드, 코카콜라, 후지쯔 등 불과 887곳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포스코, 삼성SDI, 현대자동차 등 20개 기업이 포함돼있다.

GRI등록기업인 포스코 역시 미국 다우존스와 스위스 샘(SAM·Sustainable Asset Management)사가 전 세계 2천500여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속가능성 평가에서 철강부문 선도기업(Leading Company)으로 선정됐었다. 포스코 역시 새로운 공정기술을 끊임없이 개발, 폐수 및 배출가스를 줄이는가 하면, 공장 내 녹지를 계속해서 증가시켜오는 등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노력을 펴왔다.

포스코도 내년이면 꼭 마흔 살이 되면서 장수기업의 대열에 올라선다. 지속가능경영을 통해 100년 기업을 향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왜 지속가능경영인가?

미국에서 1900년에 상장한 회사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GE뿐이다. 기업들이 백수(白壽)를 누리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

지난 100년간 일본의 100대 기업 평균수명은 약 30년, 한국은 23.8년에 머물렀다. 이 기업들이 다음 세대에도 존재할 확률은 12%, 3세대로 가면 그 중 3~4%만 생존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평균 나이는 32.9세. 그러나 벤처기업 등이 주류를 이루는 코스닥 기업은 평균 연령이 16.7세다. 유가증권과 코스닥 기업을 평균할 경우 23.8세에 불과하다.

상장기업들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기업을 공개하는 만큼 재정기반이 좋은 편. 결국 국내 전체 기업의 평균 수명은 이보다 훨씬 짧아진다. 업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신설기업의 40%가량이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28만여 개 기업정보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현재 국내 기업의 평균 연령은 10.4세로 지난 2000년보다 2.3세가량 낮아졌다. 우리 산업현장에서 7, 8세만 돼도 환갑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물론, 기업인들도 100년 이상 생존한 미국의 GE를 들여다보면서 '장사만 잘해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GE는 전 세계 기업들이 벤치마킹에 나설 만큼 철저한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등 지속가능경영을 통해 장수를 누리고 있다는 것.

진병용 대구은행 경제연구소 본부장은 "영업을 통한 재무성과는 한 회사를 영속기업으로 만드는 데 약 15~30%정도밖에 기여를 못한다."며 "그 기업이 얼마나 바른 윤리를 갖고 있고, 환경보존에 이바지하며, 직원들이 얼마만큼 많은 사회봉사를 하는지 등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는 기업이 결국 오랫동안 시장에서 생존한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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