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FC 비밀의 방 '라커룸'

"승패 희비 짙게 밴 긴장의 공간"

축구장의 라커룸(Locker Room). 말 그대로 닫힌 곳이다. 선수들이 유니폼을 갈아입고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공간만은 아니다. 라커룸은 기적을 만드는 곳이다. 전반전 내내 무기력했던 팀이 하프타임을 계기로 승리를 일구기도 한다. 하지만 승부에서 질 경우 라커룸만큼 우울한 곳도 없다. 그래서 일반인은 물론 취재진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라커룸은 늘 닫혀있다.

지난 7일 광주 상무와의 K리그 5라운드 경기가 열린 대구 월드컵경기장 내 대구FC의 '비밀의 방'인 라커룸에 들어갔다. 석광재 대구FC 운영팀장은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취재진에게 허용된 적이 없다."면서 "외부인이 라커룸에 들어오면 경기에 질 수도 있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말했다.

▶PM 1:30

폭풍 전의 고요일까. 오후 3시 경기를 앞두고 라커룸은 예상보다 조용하고 차분하다. 변병주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내린다. "상대팀과 우리의 실력은 백지 한 장 차이다. 우리 팀의 실력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득점하든 실점하든 서로 격려하면서 경기하자."

라커룸 한구석에 서 있던 기자에게 주장인 김현수 선수가 일침을 날린다. "누구세요. 들어오시면 안 되거든요." 감독님께 허락을 받았다는 말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병근 선수가 "라커룸은 참 민감한 곳"이라고 보탠다. 선수들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김기현 트레이너가 선수들의 허벅지를 마사지해주고 루이지뉴 선수는 몸을 이완시키는 젤을 빨아먹는다.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발에 테이핑을 한다.

▶PM 2:05

선수들이 라커룸 옆 워밍업실에서 몸을 푼다. 워밍업실은 인조잔디와 트랙이 깔려 있는 곳. 서로 공을 패스하고 스트레칭하면서 몸을 풀고 있다. 바닥에 주저앉아 붉은색 축구화 끈을 매고 있는 이근호 선수에게 다가갔다. "경기 전 인터뷰를 하지 않거든요. 끝나고 하면 안 될까요."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김기현 트레이너는 "라커룸은 편안하면서도 엄격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곳"이라면서 "선수들은 긴장이 되기 때문에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심지어 어깨 만지는 것도 싫어한다."고 말했다.

▶PM 2:17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위해 경기장으로 올라갔다. 같은 시각 라커룸. 변 감독은 홀로 앉아 마지막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백전노장인 변 감독에게 라커룸은 어떤 곳일까? "잘하고 들어오면 고개를 들고 씩씩하게 들어오고 못 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오게 됩니다. 감독의 질책이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죠."

▶PM 2:45

조용했던 라커룸이 일순간 시끌벅적해진다. 경기장에서 몸을 풀던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선다. 이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시간이다. 루이지뉴 선수가 얼굴을 윗도리에 푹 파묻은 채 승리의 기도를 올린다. 기도를 마친 루이지뉴가 유니폼으로 성호를 긋고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한 뒤 옷을 입는다. 이제 승리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PM 2:50

선수들이 변 감독을 둘러싼다. "우리 홈이다. 우리 잔치다. 상대보다 먼저 리드하자."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모여 우렁차게 "파이팅!"을 외친 뒤 라커룸을 빠져나간다.

▶PM 3:50

광주 상무와의 전반전을 1대 1로 비긴 선수들이 들어왔다. 변 감독의 질책이 이어진다. "왜 상대팀과 늘어져서 움직이는 거야. 기동성이 없잖아." 감독의 정면에 앉은 김현수 선수가 조용히 바나나를 먹는다. 루이지뉴 선수는 마그네슘을 먹고 이근호 선수는 생수를 들이켠다. "너무 가라앉았다. 움직일 힘이 없으면 패스를 강하게 해라." 선수 각자에게도 질책은 쏟아진다. "현우야, 자기 체력 많이 남아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쏟아줘야지."

▶PM 4:00

짧은 휴식시간이 끝났다. 선수들이 하나둘 일어나 감독을 주위로 원을 그린다. 그리고 손을 모은다. "후반전은 체력싸움이다. 힘들 때 승부가 나는 거야. 서로 도와주자. 자, 파이팅!" 힘찬 구호를 마친 선수들이 다시 라커룸을 나선다.

▶PM 5:05

경기는 2대 1로 이겼다. 다행이다. 라커룸으로 들어서는 선수들의 표정이 밝다. 이날 수훈을 세운 이근호 선수와 루이지뉴 선수의 표정이 유난히 밝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서로의 어깨를 쳐준다. 90분간 옥좼던 축구화가 벗겨지고 맨발이 드러난다. 성한 곳이 없다. 외부인이 있기 때문일까. 선수들은 샤워하는 것을 망설이는 듯하다. 이근호 선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수건으로 맨몸을 가린 채 샤워실로 들어간다.

자리를 피해 변 감독을 찾았다. 변 감독은 웃으며 "만약 경기에 졌다면 왜 라커룸에 외부인을 출입시켰느냐며 난리가 났을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승리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글·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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