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아프리카 초원학교

우리 아이 조기유학 아프리카로 갔다

아프리카 초원학교/ 구혜경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대한민국의 부모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생활과 노후 대책까지 담보해야 하는 살인적인 사교육비에 짓눌려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기유학 열풍에 편승하지 못하는 현실을 죄스럽게까지 느끼는 분위기다.

"내 자식을 남보다 좀 더 낫게 키워보겠다."는 욕심(?)이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은 조기유학 열병을 전염시키고, "아이를 영어 속에서 키울 수 없을까"하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이 철부지 아이들을 데리고 꿈꾸듯 미국과 호주로 떠나게 한다. 남보다 '더 빨리' 살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극성파 엄마 중 하나로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극성파의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 극성파라고나 할까. 일곱 살과 다섯 살짜리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난 곳이 인기있는 미국이나 호주가 아니라 아프리카라는 점이 색다르다.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키울 수 없을까"하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부터 저자의 각별한 자녀 교육관은 이미 싹을 보였던 것 같다. 큰 아이가 다섯 살때 보낸 곳이 보통의 어린이 집이 아닌 '공동육아집'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한글이나 숫자, 영어 같은 것을 특별교육시키는 곳은 아니지만,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서 어린이 집을 짓고, 선생님을 모셔다 꾸려가는 시스템으로 봐서 부모가 감당해야 할 부담과 수고로움은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극성 어린이 집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공동육아집에서 하는 일은 매일 오전에 산으로 산책을 가고, 친환경농산물로 먹을 것을 만들고, 날마다 아이들에 대한 기록을 적는 것, 이 것이 전부였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지금도 농·어촌 어린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생활일 놀이다. 이런 것에도 부모의 수고와 돈이 들어야 하다니, 참······.

사람은 항상 새로운 것을 꿈꾼다. 일상적인 우리의 자연은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자연의 축복을 자녀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엄마의 욕심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보았던 광활한 대자연의 이미지가 그들을 아프리카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 가족들은 아프리카 생활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에도 온풍기 없이 잠들기 어려운 '추운' 곳(나이로비)이 있다는 것, 바람에 흩날리는 비닐더미,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이들, 이곳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친 영어광풍, 땡볕 아래 느릿느릿 걸어가는 마사이들의 고단한 삶······.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의 6개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아프리카 생활을 통해 저자 가족들은 비교적 성공적인 교육 효과를 거둔 것 같다. 땅벌레와 지렁이, 민달팽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고, 낡은 페인트 통에 심어진 아보카드나무가 아이들과 더불어 자라는 모습에서 생명의 경이로움도 느꼈다. 또 전기 없이 양초 하나만으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을 보았고, 열악한 의료시설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고 의사가 될지를 고민하는 아들도 생겼으니 말이다.

어쩌면 저자 자신이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을지 모른다.

"그저 좀 느리게 살아보자 다짐한다. 잠시 멈춰서 늘 보았던 것들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섬세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차이와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유행병처럼 퍼져가는 조기유학 열풍에서 저자는 미국이나 호주가 아니라 아프리카를 택했고, 많은 것을 얻었다. 그래서 참신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런 느낌과 깨달음, 교훈은 굳이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바쁜 걸음을 멈추고 선입견에서 벗어나 우리의 일상을 천천히 되돌아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335쪽, 1만3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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