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오늘-이상백 사망

체육계와 학계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이상백이 1966년 4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강의를 준비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며칠 후였다. 1904년 대구에서 출생, 대구고보와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이상백을 일컬어 "한국의 쿠베르탱", "한국 사회학의 창건자", "일본 농구의 아버지" 로 불렀다. 그만큼 업적이 남달랐다.

그는 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가져 대구고보 시절엔 연식정구, 와세다대학 시절엔 농구부를 창설하는 등 당시 일본농구계와 체육계에서 활동, 1932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대표단 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 이후에는 열악한 한국체육계를 국제무대로 진출시키며 KOC위원으로 활동, 1964에는 IOC위원에 선출됐다. 또한 학문 분야에서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시 사회학과를 처음 만들었고, 고려말, 조선시대에 대한 연구활동으로 '한국사'를 집필하는 등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상백은 몽양 여운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건국준비위원회에서 간부로 활동 중 여운형이 암살되자 정치에서 손을 떼고 체육계와 학계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반공시대에 '몽양계'로 찍혀 심한 견제를 받기도 했다. 그의 4형제는 각분야에 출중하게 이름을 남겼다. 미술가, 한학자, 중국 국민군 장군인 독립운동가 이상정이 큰형, 둘째형은 시인 이상화, 동생인 이상오는 수렵인으로 유명했다. 그는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묻혔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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