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당당한 '엄마 선생님'들

똑똑한 엄마들의 진화, 엄마의 자격증 시대?'

나날이 치솟는 사교육비와 각종 예능 교육의 강화로 직접 배워 자녀들을 가르치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자격증을 찾는 엄마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각 대학 평생교육원을 비롯한 각종 교육단체에서 개설한 독서, 영어, 가베, 신문활용교육 등 다양한 자격증 강좌에 주부들이 몰리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이들 자격증을 활용해 방과후 지도교사, 학원 교사 등 제2의 직업을 찾을 수도 있어 인기가 높다. 부지런하고 똑똑한 엄마들의 교육현장을 찾아가본다.

◇ 주산활용수학교육사 박해식씨

"2원이요, 5원이요, 7원이면?"

"14요!!"

주부 박해식(43·대구 달서구 용산동) 씨는 요즘 아이들과 주산 놀이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 알록달록한 주판을 앞에 두고 암산으로 답을 맞히는 아이들을 볼 때 '자격증 따길 잘했다.'며 뿌듯해진다.

박 씨는 지난해 10월 주산활용수학교육사 자격증을 땄다. 교육기간이 긴 데다 적지 않은 수강료가 부담이었지만 박 씨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수학을 쉽게 잘하기 위해선 수와 친해져야 한다, 암산을 잘해 자신이 붙으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한동안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던 주산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박 씨는 주산 예찬론자다. "20년 전 배웠던 주산이 지금도 알게 모르게 많이 사용되거든요. 수의 기본 개념을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막연히 숫자를 어려워하던 딸 현(9)이도 주산을 공부한 지 1년, 이젠 수와 노는 법을 알게 됐다. "수학을 좋아한다."는 현이는 이제 막히는 도로 위에서 앞차 번호판의 숫자를 더하는 놀이를 즐긴다. 어느 날인가, 교육과정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던 동생 민석(7)이까지 주산에 흥미를 갖고 암산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교육기간 동안 초등학교 수학 과정은 모두 마스터한 셈이어서, 아이들 수학 지도에 체계가 섰다. 무작정 학원이나 학습지 진도를 따라가는 것과 엄마가 전체 내용을 알고 이끌어주는 것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

지난 주부터 박 씨에게 주산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웃집 다영(9)이도 한창 주산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아직은 아이 키우는 데에 바빠 방과후 특기적성 교사, 문화센터 등 강사 제의를 거절하고 있지만 앞으로 자기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도 박 씨가 자격증을 따게 된 이유다.

"컴퓨터 시대에 왜 주산이냐고 묻지만, 옛날 방식이 좋은 것도 많아요. 아이들 교육은 물론 진로 개발에도 도움이 되니까, 자격증 따기 잘했어요."

◇ 독서·논술 지도사 황현주씨

'아이가 크고 나면 나도 내 일이 있어야 할 텐데, 아이와 같이 클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주부 황현주(36·대구 수성구 만촌3동) 씨가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 자격증에 동시에 도전하게 된 이유다. 딸 수림(9)이를 논술학원에도 보내봤지만 모두 수박 겉핥기뿐, 독서 습관을 뿌리부터 잡아주는 곳이 없었다. 직접 해야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 지난 3월. 이젠 수림이가 공부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예전엔 책 고를 때 오버했어요. 글자 가득한,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골라줬죠. 얼마나 무식한 일이었는지 몰라요. 키 크는 속도가 다르듯, 아이의 눈높이도 다른데 말이죠." 수림이와 책을 읽다 보니, 황 씨의 독서목록도 부쩍 늘었다. 학교 졸업 후 10년간 읽은 책보다 최근 3개월간 딸과 함께 읽은 책이 더 많으니, 엄마에게도 큰 공부인 셈이다.

황 씨는 6개월 전, 거실에서 과감히 TV를 치워버렸다. 대신 책으로 벽면을 채우자 처음엔 남편이 황당해했다. 하지만 이젠 남편은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조력자가 됐다. 수림이가 책에 푹 빠지는 것을 아빠가 직접 목격하면서부터다.

"엄마가 욕심 가지지 않으면 아이가 책읽는 시간 내기 어려워요. 학원이다, 학습지다 바쁘거든요. 하지만 알아서 책 읽는 아이는 없어요. 엄마가 신경쓰는 만큼 아이의 독서능력은 길러집니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황 씨는 자기 전 10분 책읽어주는 것과 독서 지침서 한 권쯤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황 씨는 앞으로 독서 홈스쿨을 하고 싶단다. 그저 단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엄마와 책, 아이 삼박자가 맞물려 책을 즐길 수 있도록 엄마와 아이를 함께 지도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것.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책과 함께 평생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그게 저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니까요." 몇 년 후, 책을 읽으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황 씨의 미니도서관에 가득한 날이 오지 않을까?

◇ 어린이영어지도사 박수경씨

"Where are you Teddy Bear?", "I Love you!"

영어 동화책이 밖으로 걸어나왔다. 예쁜 동화 캐릭터에는 영어로 된 이름표가 붙어 있고 침대와 곰인형도 있다. 펠트로 알록달록 배경을 만들기도 한다. 박수경(36·대구 달서구 두류동) 씨는 네 살 영빈이와 놀이같은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동화책을 인형놀이처럼 만들어 영빈이와 놀아주니 영빈이는 자연스레 영어를 따라하고 영어노래를 부른다. 영어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 평소 영어를 좋아해 아이를 낳고도 영어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박 씨는 영빈이를 위해 지난주 어린이영어지도사 자격증 시험을 치렀다.

단지 영어를 아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영빈이의 발달 상황에 맞게 영어를 효과적으로 가르쳐주기 위한 것. "영어를 너무 일찍 가르쳐도 부작용이 있잖아요. 지금 영빈이가 영어에 한창 흥미를 보여, 직접 가르쳐주기로 했어요. 엄마보다 좋은 선생님이 있나요?"

뿐만 아니다. 박 씨는 지금까지 한글은 물론 미술, 음악까지 영빈이를 직접 가르치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한 박 씨는 아이가 원하는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주기도 하고 피아노를 쳐주며 노래를 가르친다.

"학습지나 유치원은 정해진 스케줄에 아이를 맞춰야 하지만, 제가 직접 가르치면 아이가 가장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요. 집중력이 좋은 아침에는 책을 읽어주고, 만들기를 하고 싶어하면 만들기를 하고, 그런 식이죠."

엄마가 모든 과목의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셈. 덕분에 아이는 더 친근하게 모든 것을 익혀간다. 박 씨는 '7살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줄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자격증을 따기로 한 것.

박 씨가 어린이영어지도사 과정을 공부한다는 얘기에 주변 또래 엄마들도 "우리아이도 같이 하자."고 졸라댄다고. 박 씨는 영빈이의 공부에 집중한 후 유치원 관련 교사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엄마예요. 엄마 손길만큼 아이가 커나갑니다."

최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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