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경주시민들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경주는 신라천년의 고도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이다.

경주시민들은 문화재 보호법으로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사유재산의 피해를 감내하면서도 역사문화도시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기 위해 참고 또 참아 왔다. 그러나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아야 할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 경주는 정부의 무관심과 경주시의 열악한 재정으로 말미암아 그 면모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자부심만은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경주시민들이 경주가 갖고 있는 역사문화도시의 정체성을 훼손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을 많이 한다. 또 이 같은 우려를 하면서까지 89.5%라는 경이적인 찬성률로 핵 쓰레기장을 유치하게 된 것은 경주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큰 바람에서였다.

특히 경주시민들은 특별법까지 만들어 방폐장 유치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참여정부의 의지와 당시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이 말한 가용자금의 아낌없는 지원 등을 믿고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심정으로 모든 국민들이 회피하던 방폐장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경주는 어떤가? 방폐장 유치 이후 경주는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와 양성자가속기사업 부담 가중 및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사업비 등으로 지역·조직·계층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더불어 최근 산업자원부 등 정부 부처는 갈라지고 터진 경주시민들의 상처는 아랑곳않고 '특별법 취지는 기존예산이나 기존사업 위주로 지원하며 신규 사업은 안 된다.', '유치 당시 주무 장관의 발언은 애향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다른 지역의 국민들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경주지역이 모처럼 맞은 발전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을 하면서 정부의 19년 묵은 골칫거리를 해결해준 경주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최근 정부 부처 관계자의 언론 기고문이나 보도, 태도 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방폐장 지원 특별법 제1조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유치한 지역에 대한 지원체계를 마련하여 유치지역의 발전 및 주민의 생활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돼 있다.

지난 3월 말 유치지역지원 실무위원회 회의에서 본 위원회에 상정키로 한 지원사업 60건, 4조 2천343억 원 중에는 지방비 등 기타 부담금 1조 2천786억 원을 제외하면 국비지원 사업비는 2조 9천557억 원이며 이마저도 기존의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과 이미 추진 중인 사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60개 사업 중 방폐장 유치에 따른 인센티브 성격의 사업은 경주시민들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주시민들은 정부가 특별법 규정에 따라 당연히 특별재원을 마련하여 방폐장 유치지역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변함이 없다.

지금 경주시민들은 최근 정부가 취하고 있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분노로 지역의 126개 시민·사회단체가 '경주방폐장 범시민연대'를 구성해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만일 정부가 19년 동안 풀지 못했던 방폐장을 수용한 포용력 있는 경주시민들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원전 관련 모든 사업은 더 이상 경주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주지해야 할 것이다. 경주시민들은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백수근 경주방폐장 범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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