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金潗 전 체육장관의 경우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히틀러도 '그의 할아버지가 유대인이었다'는 루머의 뿌리를 끊어보려 했지만 끝내 루머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1938년 3월 할아버지가 유대인일지 모른다는 루머를 확인시켜줄 문서와 할아버지 무덤이 있던 오스트리아 뮐러 샤임 마을을 점령, 주민을 대피시킨 뒤 맹렬한 포격을 가해 마을과 무덤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루머의 진원지를 깡그리 없애버린 것이다. 그러나 20년 뒤 적대적 감정이 남아있는 프랑스에서 또 다시 히틀러가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루머는 되살아났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들은 루머가 전파자들의 복수심이나 시기심 또는 반대로 우호적 동정심 등에서 왜곡'과장 날조돼 이어지고 반복 생성되는 속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도 정권유지 목적의 루머를 효과적으로 퍼트리기 위해 만든 것이란 루머가 있었다. 새 정권이 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신정권에 대한 민중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새로운 사회 초기에 만연되기 마련인 적(구정권)의 루머를 깨기 위한 역공작의 '루머 퍼트리기'가 필요해진다. 용비어천가는 이씨왕조의 혁명이 天命(천명)에 의한 것이라는 식으로 정권 탈취의 정당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성계가 다른 장군들이 못 올라가는 절벽 위로 말을 달렸다거나 위화도 섬이 장마에도 괜찮다가 이성계가 회군하자 물에 잠겼다는 따위의 루머다. 선동적 '루머'내용을 漢字(한자)를 모르는 여성과 일반 민중들에게 최대한 빨리 전파시키기 위해서 신정권이 쉬운 문자(한글)를 창제해야 했다는 정치적 시각의 루머다. 자주적 문자 창제란 가치도 반대론자의 부정적 시각으로는 루머가 되는 경우다. 소모적 루머나 악의적 비생산적 루머는 그 사회를 정서적으로 병들게 만든다.

대구는 오래전 '남의말 좋게 하기'란 캠페인을 벌여야 했을 만큼 사사로운 소문과 소모적 루머가 많다는 소리를 듣는다. 대륙적 기질과 대범한 性情(성정)을 지닌 점잖은 學鄕(학향)도시임에도 간간이 그런 비판을 들어온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못된다.

얼마 전부터 시중에 떠도는 '퇴역의사의 자식 소송' 루머만 해도 그런 경우다. 전 국회의원이자 체육부장관이며 지역의 저명했던 소아과 의사였던 金潗(김집) 씨는 1926년생으로 연세가 81세다. 루머의 내용은 그가 아들 3명에게 유산을 다준 뒤 한국 최고의 노후 요양시설이라는 서울 S노블카운티에서 지내왔는데 아들들이 입주비를 몇 번만 대주고는 서로 미루는 바람에 쫓겨나게 됐고 그래서 값싼 대구의 M요양원으로 옮겨와 있게 되자 아들들을 상대로 유산반환 청구소송인가를 냈고 얼마 전 승소했다는 소문이다. 루머는 소송을 취하했다는 데까지 발전했다.

루머의 진원을 알아봤다. 우선 아들은 세 명이 아니고 외동아들이었다. 또 현재는 심장 박동기를 달고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몇 년째 심장 분야 전문가인 사위 의사가 서울에서 직접 체크한다. 따라서 대구에 내려올 수가 없고 대구로 옮겼다는 M요양원에도 조회결과 입원이나 입주기록이 없었다. 가족들이 억장이 막혀 떼온 서울 S노블카운티에서 발행한 '입주확인서'에는 (발급번호:주거B 2007-001) 김전 장관 부부가 정상 입주 중이라는 직인이 선명하다. 의사인 외아들은 아버지 수발 등을 위해 자신의 소아과 의원도 휴업 중이다. 작년엔 1년내 거의 매주 일요일 서울을 오르내리며 간병했다는 아들은 그래도 '아버지가 대구를 오래 떠나 계셨고 제가 대구에 떨어져 살다 보니 그런 루머가 생긴 것 같다. 내탓이다'며 남탓을 비켜갔다.

이제 대구는 U대회에 이어 세계육상경기대회 유치를 이뤄낸 국제도시가 됐다. 도시가 국제화됐으면 시민정신도 국제시민다워야 옳다. 루머 문화 역시 남의 소문 좋게 내기 쪽으로 가야 도시의 상생정신이 살아난다. 이제 대구도 좋은 루머, 아름다운 소문만 떠도는 希望(희망) 있는 도시로 만들어가 보자.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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