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배한권 作 '엄마의 런닝구'

작은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요즘도 "대지비만한" 구멍 뚫린 속옷 입는 엄마가 있을까. 있을 거야,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엄마가 엄마의 자리를 쉽사리 내어놓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 동네 열 살짜리 소라는 왜 할머니하고 살까.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문 접한 적이 없는데. 날품 파는 소라 아버지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는데. 소라 엄마는 더 이상 구멍 뚫린 "런닝구"를 입기가 싫었나 보다. 요즘 세상은 왜 자꾸 소라 엄마 같은 사람이 늘어나는 걸까.

'한권 어린이'는 좋겠다. 엄마를 걱정할 줄 아는 작은누나가 있고,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정 뜨거운 아버지가 계시니. 무엇보다 다행한 일은 엄마가 구멍 뚫린 "런닝구"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 알뜰한 엄마를 둘러싼 나와 작은 누나와 아버지의 배려와 연민의 마음, 그 마음이 가난한 부엌을 훈훈하게 달궈주었겠구나.

배한권 어린이의 동시를 찾아내 책으로 엮으신 이오덕 선생님, 집 나간 소라 엄마 찾아 종아리 좀 때려주세요.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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