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이(FTA) 지난 2일 타결됐다.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협상이 국익에 도움을 주고 시대적 흐름인 개방화와 무한경쟁시대에 대응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농촌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국익을 앞세워 가뜩이나 어려운 농업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며 결국 농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의성군은 군민의 6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업군으로 쌀 생산은 경북도내 3위, 사과와 고추는 전국 2위, 한지 마늘은 전국 1위의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들 작목에서 연간 3천억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축산분야에서도 한우 2만 2천여 마리와 돼지 7만 2천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어 경상북도 전체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협상타결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이 경북이고 그 중에서도 의성군이 최대 피해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WTO나 한·칠레 FTA 등을 거치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산 농산물의 위력을 실감한 농민들로서는 세계 최대의 농업 국가인 미국으로부터 밀어닥칠 농산물 쓰나미를 생각하면 한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들리는 건 군민들의 한숨소리뿐이고 이제 농촌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패배의식으로 무기력감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농민이 적지 않다. 지금의 농촌 문제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과 같이 경제논리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물론 농업 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필요하면 구조조정도 해야 한다. 그러나 농촌 현실을 들여다보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데다 영세농이며, 농업 이외에는 대안이 없어 쉽게 농업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당장 먹고 살기에 바쁜 농민들에게 과학 영농을 이야기하고 농업의 규모화와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을 강조해 봐야 설득은커녕 비웃음만 살 뿐이다.
먼저 피해 부분에 대한 직접 지원뿐만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간접 지원도 필요하다.
농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농업 현장에 대한 방문과 연구가 더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정부에 바라는 것은 농촌 현실을 감안한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수립해 달라는 것이다. 10년간 119조 원을 투입한다고는 하지만 농민들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는다. 물론 농촌 기반 조성도 필요하지만, 농가 소득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시책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농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 효율적인 지원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농민들은 국내산 농산품을 보호하기 위한 원산지 표시제를 확대하고 단속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을 바라고 있다. 뿐만 아니다. 모든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에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 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 음식점은 원산지 표시대상이 아니며 한우도 매장면적이 90평 이상 되는 대형 식당에서만 부위별로 구분하도록 하는 등 허점이 많다. 축산분야는 시설현대화를 위한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금리를 현행 3%에서 1%로 낮추고, 전염병 예방백신 지원 사업을 60%에서 100%로 확대하고, 고시가격을 현실화하는 등 축산 농가의 불안심리를 해소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성군에서는 부군수를 단장으로 FTA 대책반을 구성, 각 부서별로 예상되는 피해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정부에 농업 지원 대책을 건의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개방이 불가피하다면 경쟁력 있고 전문성을 갖춘 농업으로 전환해 외국산 농산물과 싸워 이겨야 한다. 정부는 FTA 협약 체결로 이익을 얻는 분야의 일부를 농업 분야로 돌려 지원을 강화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농민들은 최장 20년간의 유예기간이나 세이프 가드 기간 동안 농업의 체질 개선과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농업 현장의 어려움을 중앙 정부에 알려 효율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지금 당장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의에 빠진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반드시 농촌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위기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어려움이 닥칠수록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극복해 온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듯 지금의 이 위기도 정부와 농민,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치고 전 국민이 혼연일체가 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복규 의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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