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사기 그릇 표면에 '공출보국'(供出報國)이란 파란색 글자가 찍혀 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 수행 물자 확보를 위해 대대적으로 놋그릇을 강제 공출하고 대신 지급한 사기 그릇이다. 오래전 우리의 아픈 역사가 그릇에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진 세월에도 놋그릇은 단절되지 않고 기어이 살아남았다. 놋그릇은 우리만이 가진 고유한 식기이다. 예로부터 시집살이보다 더 매운 것이 놋그릇 닦는 일이라 할 정도로, 손질도 보관도 어려운 이 기물은 7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시골 동네 잔치 전날 아낙네들이 모여서 가루낸 기와 조각을 연마재로 삼아 짚을 뭉쳐 문지르며 놋그릇을 닦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그릇류의 양은 그릇과 멜라민으로 불리는 플라스틱 식기들의 등장으로 급격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놋그릇 특유의 그 무겁고 불편하던 느림의 미학도 함께 사라졌다. 놋그릇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 제품으로 만드는 방법에 따라 주물 기법과 방짜 기법이 있다. 주물은 금형의 틀에 쇳물을 부어 만들고 방짜는 수없이 두드려 펴면서 형태를 만들어 간다.
방짜 놋그릇의 경우 순수한 구리 78%와 주석 22%로 합금 비율을 정확히 맞추어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온다. 합금의 비율이 다르거나 불순물이 섞이면 두드리는 과정에서 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어렵고 공이 많이 가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요즘 들어 놋그릇이 여러 가지 질병에 예방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다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놋그릇 중에서도 품질이 가장 좋은 방짜는 식품의 농약성분을 감지하고, 식중독균마저 없애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위액 분비를 촉진시켜 소화를 돕고 혈압을 안정시키는 성질도 갖고 있으며, 겨울철에 잘 발병하는 위장과 간, 호흡기 계통의 여러 질환을 막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신선한 야채를 놋그릇에 담으면 그 신선도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도 한다.
우리 조상은 놋쇠를 이용해 그릇뿐만 아니라 수저, 밥상, 대야, 식도, 침 등 일상생활에서 위생이 요구되는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생필품 제작에도 건강을 소중히 여기는 생활의 지혜가 담겨있는 셈이다. 전통의 우리 놋그릇을 다시 식탁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어떨까? 특히 식중독이 빈발하는 학교 급식 등 단체 급식용 식판을 놋쇠 재질로 바꾸는 것부터 적극 검토해 볼 만한 일일 것이다.
조현제(한옥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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