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학명문 포철 지곡초교 노하우)아낌없는 투자+학교측 열정 '합작품'

100% 인재 선발…자기주도적 수업 유도

"이 도형 문제는 이렇게 풀어보면 되잖아." "어, 정말 그렇네."

12일 오후 포항제철지곡초등학교 6학년 (방과후) 수학부 교실. 스무 명의 학생들이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지난 시간 과제물로 나온 수학 문제를 토론하느라 시끌벅적했다. 알쏭달쏭 잘 풀리지 않는 문제는 옆 모둠에서 또래 친구가 나서 도우미를 자처한다. 최성호(수학부 총괄) 교사는 칠판 앞에서 흐뭇한 웃음을 지은 채 지켜볼 뿐이다. 이날 1시간30분의 수업에서는 20~30분의 자유토론이 끝나고야 오늘의 문제와 풀이법이 칠판에 제시됐다. 최 교사는 "이중 상당수가 저학년 때부터 수학부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이런 식의 자기주도적 수업방식에 익숙하다."고 귀띔했다.

▶수학 명문으로 우뚝 서다

포철지곡초교는 포스텍 인근의 지곡 주택단지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외국의 명문사립초교를 연상시키는 건물이 자못 인상적이다. 올해로 개교 10년째를 맞은 이 초등학교는 최근 수년 새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학 명문학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학교 측이 제시한 2004~2006년 각종 대외 수상 실적을 보면 각종 대회를 휩쓸다시피했다. '전국수학학력경시대회 최우수학교상', '전국수학학력평가(NMC)최우수학교상' 등 단체상뿐 아니라 학생 개개인도 국내외 각종 수학관련 대회에서 출전 때마다 최우수상, 대상 등을 연거푸 수상했다. 모 대학이 주관하는 한 수학경시대회에서는 총 12차례를 치르는 동안 대상을 놓치지 않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5회 '국제수학경시대회' 해외 본선에서 대상을 차지한 6학년 김도완(12) 군과 4학년 강대훈(10) 군을 만나봤다. 둘은 일본,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한국 등 7개국 대표 초등학생 89명이 참가한 대회에서 학년별 챔피언을 차지했다. 3학년때부터 수학부에 들어왔다는 도완 군은 "수학부에 들어와서 선생님이 내주시는 많은 문제를 풀어보면서 실력이 는 것 같다."며 "수학부 수업이 일주일에 4일이라 매일 2, 3시간씩 수학 숙제를 해 가야 하기 때문에 따로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훈 군은 1학년 때부터 줄곧 수학부를 지켰다. 대훈 군은 "안 풀리는 문제는 먼저 친구들끼리 해결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선생님께 설명을 부탁한다."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다 풀었을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수학부에서는 학생의 성향에 맞춰 따로 개인 과제물을 내주기도 한다. 문제를 해석하는 접근방식이나 아이디어는 좋은데 단순 계산에서 많이 틀리면 집중력 훈련을 위해 많은 양의 숙제가 주어진다.

"1학년 경우 매년 신입생 200명 중 절반가량이 수학부에 응시하고 있고 학부모님들도 수학부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수학부에 합격한 아이들은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스스로도 큰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김칠룡 지곡초교 교장은 "왜 하필 수학이냐고 묻는다면 수학을 잘하면 여타 과목도 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철고-포스텍으로 이어지는 이공계 인재를 키우기 위한 포철교육재단의 포석이기도 한 셈이다.

▶영재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라

포철지곡초교가 수학 명문 학교로 부상하게 된 이유는 학생 개인의 능력, 학부모의 교육열에 앞서 학교 측이 마련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양질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포스코교육재단은 거액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학교장과 교사들은 학생들의 수학능력 향상을 위해 더 좋은 교육방법을 고심했다. 지난 10년간 시행착오와 연구를 거듭한 작품이다.

포철지곡초교를 들여다보면 수학 잘하는 학생을 키우기 위해 각 톱니바퀴들이 잘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 학교 수학 영재 교육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채널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것이 개교 때부터 운영해 온 수학부. 학년별로 학기초에 10%를 선발한다. 계산능력을 묻는 문제와 창의력을 검사하는 문제 등 두세 단계 시험을 통해 뽑는다. 학년이 바뀌면 다시 선발 시험을 친다. 기존 수학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는 없다. 수학부 학생 중 평균 70, 80%가량이 잔류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 단 6학년으로 올라갈 때는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최성호 교사는 "이미 일반 학생들과는 수학 능력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학부 교사들은 수년씩 같은 학년을 맡는다. 따라서 수학부 학생들은 내년에 어느 선생님에게서 배울지 미리 알 수 있다. 하창해 1학년 수학부 교사는 "4년째 1학년 수학부를 맡고 있다. 지곡초교가 수학 명문학교로 성장한 데는 이런 일관성과 전문성을 잘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학부에서는 수학에 대한 흥미와 창의성을 길러주기 위한 집중적인 학습이 진행된다. 또래에 비해 공부량부터 월등히 많다.

최익황 5학년 수학부 교사는 "주 4일 있는 수학부 수업 때마다 30, 40문제를 숙제로 내준다."며 "주로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 기출문제집에서 고르기 때문에 수학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도 3시간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학부는 방학 때도 7~10일가량 캠프를 진행한다. 바뀌는 학기, 학년에서 배울 기초적인 내용을 미리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새 학기에 심화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철지곡초교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색은 러시아인 수학 교수가 가르치는 영재 수업이다. 수학부 4~6학년생들은 현재 주 2시간씩 이 수업을 듣고 있다. 일반 학교에서는 우선 비용면에서 엄두를 내기 힘든 부분이다. 현재는 러시아에서 22년간 영재교육을 해온 빨추노프 교수가 네 번째로 바통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에는 같은 재단 포철동초교, 포철서초교 학생들도 선발돼 함께 참가하고 있다. 수학 영재 교육 경험이 풍부한 러시아 교수들은 1년씩 교육을 담당해 왔다. 교구, 놀이를 통한 학습이나 사고력을 길러주는 데 도움이 되는 창의적인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 김대훈 군은 "최근 문제 중에는 기차 길이와 속도, 터널을 지나는 데 걸린 시간을 주고 터널의 길이를 구하라는 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시중 문제집에서는 보지 못했던 문제, 재미있는 문제를 많이 내주셔서 좋다."고 했다.

포철지곡초교에서는 또 교육청 지정 수학 영재반을 운영, 수학부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칠룡 교장은 "수학부 전체 120명 중에서 다시 20명을 뽑아 교육청 영재반에 들게 했다."며 "러시아 수학 박사 수업과 교육청 영재반 수업을 함께 듣고 있는 수학부 학생들은 일주일 내내 수학과 씨름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포철지곡초교에서는 이처럼 '수학부', '외국인 영재 수업', '교육청 영재반' 등의 프로그램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학생들 간에 자연스런 경쟁 분위기를 일깨우고 있다. 각종 수학관련 경시대회에 적극 출전하도록 학내 분위기를 형성한 것도 아이들에게 도전의식과 역할모델을 제시했다.

▶사고력+흥미를 길러줘라

수학부 교사들은 문제를 풀어 보여주는 대신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도록 지도하고 있다. 토론식 수업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최익황 5학년 수학부 교사는 "풀이과정을 중시한다. 내준 숙제 가운데 20%가량은 풀지 못하는데, 본 수업에서 이 문제들을 다룬다. 수업 시간에 함께 풀었던 문제는 쪽지시험으로 다시 확인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복습을 충실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수학공부에서는 많은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풀이과정을 노트에 잘 정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학년 경우는 1시간 30분의 수업을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진행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10분 동안 문제를 풀었다면 10분은 질문을 받고 생각을 나누는 식이다.

"예를 들어 '전깃줄에 참새가 다섯 마리 앉아 있는데 세 마리가 날아갔다. 몇 마리가 남았나'라는 식의 문장형 문제를 주로 다룹니다. 1학년 신입생 경우 '5-3'은 알아도 문제 자체를 이해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창해 1학년 수학부 교사는 "특히 이런 측면에서 학년별 권장도서 50권을 정해 학생들이 반드시 읽도록 한 것이 이해력이나 사고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흥미와 사고력을 키워 주기 위해 학년별 수준에 맞는 큐브, 칠교, 입체 도형 등 각종 교구재도 수업시간에 등장한다. 최성호 수학부 총괄교사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세우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결과 수학을 잘 하기 위해 전학을 오겠다는 학생도 많다."며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일반 학급에도 수학부를 통해 얻은 교육 노하우를 파급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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