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여행 완전정복)②배 타고 가는 벳푸 실버여행

어머니, 휴식을 선물받다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나와 다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게 아닐까. 다른 존재들을 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외여행은 다른 존재들을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일본의 4개 큰 섬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규슈(九州). 부산에서 거리가 멀지 않다는 지리적 이점에다 엔화 약세, 무비자 등의 영향으로 최근 우리나라 관광객이 급증하는 여행지다. "한국 사람들이 규슈 주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지하도', '음료수', '금연' 등 곳곳에 보이는 한글 안내판들에서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항구인 시모노세키(下關)를 출발, 간몬대교를 거쳐 규슈로 접어든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규슈의 오이타현 유후인(由布院). 웅대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펼쳐진 작은 온천 여행지다.

지름이 1.5km 남짓한 마을이어서 자전거를 빌려 돌아보아도 좋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걸어다녀도 충분하다. 일본 여성들을 상대로 가고 싶은 여행지를 조사한 결과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최근들어 인기가 높다. 유후인을 거닐다 보면 '동화 속 온천마을'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유후인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긴린코(金鱗湖). 호수를 찾아가는 길, 오른편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롭다. 수면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가 석양빛에 반사돼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을 본 어느 시인이 긴린코란 이름을 붙였다. 호수라고 하지만 크기는 작은 연못에 불과하다. 크기로는 여행객들을 실망시킬지 모르지만 그 아름다움에서는 절로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든다. 4월의 녹음을 품은 호수의 물빛은 연두색으로 빛나고, 호수 주변의 온천, 가게들은 그림 속 풍경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긴린코를 거쳐 본격적인 유후인 답사에 나선다. 마을 전체가 잘 조화된 예술품처럼 개성있는 전통 여관들과 레스토랑, 가게들로 아기자기하게 구성돼 있다. 그 수가 200여 개에 달한다. 편안하게 산책하면서 거리 곳곳의 미술관, 카페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 있고, 작고 아담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 특유의 정취가 묻어나는 각종 공예품을 파는 가게에 들러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골목골목 숨어있는 카페와 갤러리, 가게를 누비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주어진 1시간이 너무 짧다는 불평(?)이 곳곳에서 쏟아진다.

유후인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지만 인력거를 타는 것도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전통 일본 복장을 한 인력거꾼이 끌어주는 인력거를 타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유후인에서 온천을 하지 못했지만 자연과 개성을 살린 온천 여관들이 산재해 있다.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남녀 혼욕 온천 '시탄유'를 밖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유후인이 새롭게 각광받는 온천 명소라면 벳푸(別府)는 우리나라 수안보와 같은 전통적인 온천 명소다.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곳이며, 지금도 매년 1천500만 명이 벳푸를 찾고 있다.

벳푸에서 먼저 찾은 곳은 9개의 지옥 중 하나인 가마도(부뚜막) 지옥. 화산활동으로 지하 수백m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물과 눈앞을 가릴 정도의 뿌연 증기가 흡사 지옥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지옥이란 이름이 붙었다. 뿜어 나오는 증기로 밥을 지어 신에게 바쳤다는 데서 연유한 가마도 지옥은 6개의 크고 작은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흙탕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천과 푸른 빛깔이 고운 연못 등 지옥의 모습은 다양하다. 무료로 제공하는 온천 족욕에서는 여행의 피로가 말끔하게 씻겨나간다.

벳푸에 와서 온천욕을 하지 않는 것은 수박 겉핥기일 수밖에 없다. 하이오탄 온천을 찾았다. 100% 온천 원수를 사용하는 곳으로 세계 최초로 대나무를 이용, 물을 식혀 공급하는 기술을 갖췄다는 곳이다. 폭포탕, 모래찜질 등 실내에서 하는 온천욕도 재미있지만 노천욕이 운치가 있다. 가정집 앞 마당이 바로 노천탕. 뜨거운 물에 반쯤 몸을 담그고, 가슴 위로는 찬바람을 맞으며 바위에 기대 앉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사진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