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에게.
매일 늦게 돌아오는 누나에게 화가 좀 났겠네. 우리 착한 동생아, 좀 이해해 줘. 이번 학기엔 꼭 장학금을 타야 하잖니. "이제 다 컸다고, 누나 없어도 숙제 잘 챙긴다."고 말했지. 누나도 그 말 꼭 믿을게. 대신 라면만 먹지 말고 밥 해 놨으니까 꼭 밥 먹어야 해. 이번 주말, 병원에 있는 아빠한테 엄마 사진 들고 갈까. 네 말대로 하늘에 있는 우리 예쁜 엄마의 영혼이 아빠 곁에 있으면 아빠가 빨리 깨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의식이 없는 아빠도 어쩌면 엄마가 무지무지 그리울지도 모르잖아. 이번에는 병원에서 우리 네 식구 다 같이 있을 수 있겠다. 오늘도 많이 늦을거야. 윗 문만 잠그는 거 잊지 말고. 사랑해.
-누나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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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매에겐 엄마가 없습니다. 남동생 훈이(13)가 열 살 때 유방암으로 돌아가셨지요. 제가 고3 때였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보충수업 때 교실 밖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다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몇 달 전만 해도 완치됐다고 관리만 잘하면 된다던 우리 엄마가 그렇게 세상을 떴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지요. 엄마는 암이 재발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눈을 감았습니다. 이불에서 엄마 살결이 느껴지고, 안방에 들어서면 여전히 '민아, 훈아.'하는 그 목소리가 피어오를 것 같은데···.
장례를 치르고 나오는데 훈이가 "배가 고프다."고 하더군요. 엄마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해 막 울어버렸습니다. 답답했고 암담했고 착잡했지요. 그래도 우리에겐 아빠가 있으니까 큰 걱정은 않았습니다. 아빠는 오락기 고치는 일을 했는데 낮에는 가게에서, 밤에는 출장을 다니며 기계를 고쳤지요. 하지만 지난해 11월쯤 아빠가 오토바이 사고를 내 머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그 뒤로 병원에 계신데 차도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동생과 함께 엄마 사진을 들고 가려고 해요. 아빠를 지켜주지 못했던 엄마 영혼이 병원으로 찾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엄마에게 부탁도 하고 싶어요. 제발 아빠만은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아직은 아빠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도, 동생 이야기를 말하고 싶을 때도 많거든요. 전 믿어요. 엄마는 아빠와 우리를 꼭 지켜주실 거예요.
17일 오전 대구 중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대학생 이정민(가명·20·여) 씨는 집안일을 끝내고 학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작고 마른 체구에 앳된 얼굴의 정민 씨는 요즘 들어 동생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챙겨주지 못하는데도 학교 잘 다니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동생을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고 했다. 정민 씨에게는 또 학자금 대출과 정산되지 않은 아빠의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앞을 막고 있다. "하지만 동생을 봐서라도 용기를 내려고요. 어느 순간 아빠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그런 무서운 생각이 계속 들어서, 저라도 마음 단단히 먹으려고요. 우리 남매라도 살아야 하잖아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차창 밖을 바라보는 정민 씨의 어깨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 올려져 있었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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