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한권의 책] 코끼리를 쏘다/조지오웰

이 책엔 '코끼리를 쏘다' 외에 여러 단편과 글 쓰기에 대한 오웰의 생각이 담겨 있다. '코끼리를 쏘다'는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시절 영국경찰로 버마에 근무했던 오엘의 경험담이다.

사육되던 코끼리 한 마리가 우리를 뛰쳐나와 난동을 부린다.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고 집이 부서진다. 원주민들은 영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오엘이 장총을 들고 현장에 출동한다. 원주민들은 난폭한 코끼리가 백인경찰의 총에 죽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구경 삼아 따라 나선다.

백인경찰을 따르는 원주민 구경꾼이 자꾸 불어난다.

"2천명이 넘었다."

백인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코끼리는 이미 난폭해졌던 성질을 누그러뜨리고 평온하게 풀을 뜯고 있다. 코끼리와 마주 선 백인경찰. 그리고 총을 쏘기를 기다리는 원주민들. 어떡해야 할까.

백인경찰은 이미 난폭성을 잃은 코끼리를 죽이고 싶지 않다. 곧 사육사가 나타날 것이고, 코끼리를 안전한 우리에 가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을 쏘지 않을 수도 없다. 2천명의 '관객'은 백인경찰과 코끼리로 하여금 빨리 드라마를 연출하라고 강요한다.

'이렇게 모였는데, 그 대단하고 잘난 제국의 백인경찰이 코끼리 한 마리를 못 죽인다는 말인가.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존경하는 지배신민께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단 말인가….'

물론 원주민들은 침묵했다. 하지만 그 표정과 2 천명이나 되는 무리의 힘은 말하지 않더라도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백인경찰! 무엇을 망설이는가. 코끼리를 거꾸러뜨려라. 당장 총을 쏘아라' 무언의 강요는 피켓이나 고함보다 때때로 더 무섭다.

경찰은 엎드려 총을 쏜다. 한발, 두발, 세발…. 코끼리는 쓰러졌지만 죽지 않는다. 거친 숨을 몰아쉴 뿐이다. 경찰은 탄환이 바닥날 때까지 쏘아댄다. 그러나 코끼리는 죽지 않고 고통스러워한다.

경찰은 새 총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총을 쏘아댄다. 그래도 코끼리는 죽지 않는다. 쓰러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겁고 긴 침을 흘릴 뿐이다. 새 총의 마지막 실탄까지 쏜 후 경찰은 자리를 뜬다.

코끼리를 처음 쏘는 순간부터 끝내 자리를 떠나는 순간까지 묘사는 매우 섬세하고 극적이다. 백인경찰의 바람과 달리 쉽게 죽지 않고 고통스러워하는 코끼리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오웰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총을 쏘아야 했던 자신의 고통을 대체한다. 총을 맞은 쪽은 코끼리지만 고통스러운 쪽은 오웰인 것이다.

오웰은 이 단편소설을 통해 원주민이든 점령자든 누구나 제국주의의 피해자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피지배자들이 입는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배국 시민(백인경찰)에게 지워진 부당한 의무(코끼리 살해)를 통해 제국주의는 결국 누구에게나 고통을 야기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코끼리가 죽어 가는 부분의 묘사는 세세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선 설명이 많다. 그러니까 상황을 길고 자세히 묘사하는 대신 "이렇고 저렇고 그렇다." 라는 식으로 속도감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아마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전개하려는 오웰의 습성인 듯 하다. 혹시라도 작가가 묘사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른 단편에서도 꼭 필요한 순간엔 눈앞에서 벌어지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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