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세기의 추억] ⑮옛 담장

情쌓고 풍경 고이어 작은 우주의 경계도

우리 산하(山河)를 둘러보면 밟히는 것은 흙이요, 차이는 것은 돌멩이다. 흙과 돌은 흔하디 흔한 재료다.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은 흙과 돌을 냇가나 산등성이에서 가져와 담장을 쌓았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소박한가.

담장은 한국적인 정서의 결정판이 아닐까. 철조망처럼 위압감을 주지도 않고 시멘트 담장처럼 거부감도 없다. 누구나 훌쩍 뛰어 넘을 수 있고 이웃간에 공유하고 교류하는 매개체였다. 우리네 담장은 자기 영역을 정하고 편을 가르는 표식이 아니라 생활과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 예술품이 아닐까. 옛 담장을 찾아 나서면서 우리네 정서가 던져주는 푸근함과 호젓함을 새삼 맛볼 수 있어 행복했다.

"땅을 파면 납작하고 반듯한 돌이 많이 나와요. 담장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그 돌을 주워 썼지요."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동마을 이장 김종협(57) 씨의 얘기다. 마을 담장은 맨 아래 부분에 큰 돌을 몇 층 쌓고 그 위에 납작돌(두께 2~5cm)을 벽돌처럼 촘촘히 쌓아 올렸다. 상층부에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특징 때문인지 기와 대신 넓적하고 큼직한 돌을 얹어 안정감을 유지한 것이 특징. 마을이 생긴 것이 330년 전이었는데 그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담장을 했다고 한다. 담장은 단아하면서도 깔끔한 인상을 줬다.

▶ 보통사람들이 만든 작품

경북 성주군 월면 한개마을도 학동마을처럼 무척 서민적인 느낌이다. 무질서하게 담장을 마구 쌓아놓은 듯한데도 전체적으로 아늑한 정감이 느껴진다. 돌과 흙이 섞인 토석 담장은 오래된 가옥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미적감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마을은 부농이 많이 살던 곳이라 담장은 질서 있고 조화로웠다. 돌담 길이가 모두 2천200m나 될 정도로 담장은 면 소재지 곳곳에 흩어져 있다. 큰 돌 위에 작은 돌과 진흙을 섞어 높게 쌓아올렸다. 우리네 담장은 흔히 깨금발만 짚으면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 보통인데 어른 키보다 훨씬 높게 쌓아올린 담장에서 부자 특유의 보호본능이 읽혀졌다.

경남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관광지 맞은편의 황산마을도 인근에서 손꼽히는 대지주들이 살던 곳이다. 큼직큼직한 기와집을 갖고 있는 거창 신(愼)씨 문중이 아직도 수승대 부지 배부분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담장은 배수를 위해 큰 돌을 놓고 작은 돌을 질서있게 쌓은 것이 특징이다. 신용갑(40) 씨는 "3년 전 경남도와 거창군에서 2억 원을 지원해 전통가옥 10곳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름철에는 관광객들이 길을 가득 메워 귀찮을 정도"라고 했다.

"모든 면에서 안동 하회마을에 뒤지지 않아요. 지리적으로 구석진 곳에 있어 덜 알려졌을 뿐이죠." 지리산 천왕봉에서 100여 리 떨어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 오판주(80) 할아버지는 "수백 년 된 고가와 돌담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고 자랑했다. 마을사람들은 예전에는 20채 정도의 고가들이 있었으나 6·25전쟁 당시 국군과 빨치산의 싸움 때 폭격당해 10채 가까이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다.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이기 때문인지 자그마한 돌을 차곡 차곡 쌓아올린 돌담에서 기품과 질서의식이 느껴졌다. 마을 뒤편으로 남사천이 감싸듯 흘러가면서 만든 반달모양의 마을 형태는 전통의 가치를 더해준다.

▶ 하멜이 남긴 담장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전남 강진군 병영면의 돌담이다. 병영(兵營)면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조선시대 전라 병마절도사가 주둔했던 '군사도시'였다. 1653년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한때 머물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돌담 쌓는 기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담장 아래쪽에는 다른 마을처럼 큰 돌을 몇 층 쌓아놓았지만 그 위에 작은 돌은 약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위층에서 다시 엇갈려 쌓아놓았다. 일명 '하멜식'담장이다. 자연미에 기술적인 면을 보완한 방식이다. 담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길게 도열한 병사들을 대하는 듯하다.

김성두 할아버지(79)는 "이런 방식으로 담장을 쌓으면 아랫돌, 윗돌 끼리 꽉 물고 있어 담장이 견고해진다."면서 "우리 집 담장은 100년도 넘었는데 거의 손 볼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일대에는 무려 1만m가 넘는 하멜식 담장이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 2001년 근대 문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등록문화재 제도를 도입한 이후 최대 수확은 '옛 담장'일 것이다. 지난 2005년 14곳의 옛담장이 등록됨으로써 그때까지 번듯한 구조물이나 볼만한 시설물만 문화재로 봤던 일반의 인식을 넓혀준 계기가 아니었을까.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열풍 속에서도 살아 남았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옛 담장'의 가치를 찾아낸 그 누군가의 혜안에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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