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란 말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낄 때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自慰(자위)하면서 하는 얘기다. 하지만 나이를 숫자 정도로 치부하기엔 삶이 그리 간단치 않다. 그래서 거꾸로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인생들이 많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83세에 쓰고, 피카소는 자화상을 89세에 그렸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72세에 스카이다이빙을 했고, 프랑스의 장칼몽 할머니는 120세에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또 마이클잭슨은 4세에 가수로 데뷔했고, 모차르트는 9세에 교향곡을 작곡했고, 에디슨은 10세에 과학실험실을 만들었다.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 가운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딱 한 사람을 꼽을 것 같다. 3선으로 국회 재경위원장을 지낸 대구 달서갑 지역구의 박종근 의원이다. 올해 古稀(고희)인 그가 한나라당 대구시당위원장과 국회 2011세계육상선수권 대구유치지원특위 위원장 등 2개 직함을 들고 있어서가 아니다. 골프 飛距離(비거리)가 대구·경북 의원을 통틀어 가장 長打(장타)인 까닭은 더더욱 아니다. 그를 보며 나이를 잊는 것은 지역 최고령 의원이면서 젊은 의원보다 오히려 도전적이고 열정적이어서다.
사실 몇 달 전만 해도 케냐 몸바사에서 모스크바를 제치고 대구가 사고(?)를 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최소한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국회에 1년 가까이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국회 특위 구성안이 통과되도록 동서남북으로 뛰었다. 한나라당 지도부를 압박했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아들뻘 나이의 열린우리당 의원과 인천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려는 인천의 여야 의원들의 협조를 구했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과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등 여권 인사들의 지원도 요청했다.
몸바사의 기적을 이루고 돌아온 그는 第一聲(제일성)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대구 방문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대구 방문을 성사시킨 김병준 위원장과 이강철 특보를 추켜세웠다. FIFA회장에게 대구를 도와달라며 사신까지 쓴 정몽준 의원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구를 위해서 與(여)도 野(야)도, 지역도 나이도 개의치 않았다. 이를 두고 한 老益壯(노익장) 의원이 보여준 20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이라 말하면 지나친 찬사일까?
몸바사의 환희를 만끽한 지가 '그단새' 한 달이 다 돼간다. 지난 한 달여를 돌아보면 대구에 희망이 보인다. '되는 일이 없다.'며 자조하던 대구 시민들에게서 '이제 뭔가 될 모양'이라며 꿈틀대려는 기운이 느껴진다.
평창동계올림픽과 여수해양박람회에 비해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아쉬움도 컸지만 김범일 대구시장 등이 대통령과 여권 인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슬기이고 어쩌면 여유이다.
이제 시작이다. 2011년을 대구 雄飛(웅비)의 元年(원년)으로 삼기 위해서는 정성스런 준비가 필요하다. 대회에서 좋은 기록이 나오고, 사람이 흥겹게 모이고 그래서 대한민국 대구를 세계 속의 대구로 만들려면 대구시민의 지혜와 뜨거운 가슴을 모아야 한다. 대구만의 축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축제, 지구촌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구의 이웃 지자체와 정부와 국민의 관심과 애정도 중요하다.
'2011 축제'는 19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과 달라야 한다. 역동적인 우리 국민은 반복을 지겨워하고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래서 창의적이어야 한다. 국민과 외국인들이 대구로 몰려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기발하고 풍성한 이벤트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대회를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대구가 광주에 친숙하고, 러시아와 프랑스, 케냐 사람에게 정다운 열린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그야말로 일개 육상 대회에 불과할 수도 있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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