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세상)폭력범은 즐게임! 게이머도 즐폭력?

조승희 '게임즐겼다' 증언…게임 유해성 논란 재점화

총기 난사 배후에는 게임이 있다?

최악의 캠퍼스 참사를 저지른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가 폭력성 게임을 즐겼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게임의 유해성 여부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조승희의 고교 시절 친구들 말을 빌려 그가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살인범은 폭력게임을 즐긴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미국의 밸브(Valve)사가 발매한 1인칭 슈팅(FPS) 게임. 게임 참가자는 테러리스트와 진압군으로 편을 갈라 대결한다. 비교적 정교한 그래픽과 실제로 총을 쏘는 듯한 느낌(타격감) 등으로 요즘에도 가장 인기 있는 FPS 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게임에 나오는 총기류는 실제 무기를 모델로 삼고 있으며 이 중에는 조승희가 범행에 사용한 글록 권총도 나온다.

조승희가 미국 NBC에 보낸 동영상을 보면 그의 범행 수법에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흔적이 보인다. 동영상 속에서 조승희는 검은색 티셔츠와 카키색 조끼를 입었으며 손가락이 나오는 반장갑을 끼고 있는데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등장하는 게임 캐릭터를 연상케 한다.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뉴스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20일 독일의 작은 도시 엠스데텐의 고등학교에서는 재학생 세바스티안이 폭발물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해 30여 명을 다치게 한 뒤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역시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즐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8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모 부대에서 선임병 둘을 쏘고 무장 탈영한 뒤 자살을 기도한 이등병 사건 당시에도 일부 언론은 그가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자주 했다고 보도했다.

◆끊이지 않는 폭력성 시비

폭력적인 게임이 뇌의 공격성을 자극한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 시초는 이른바 '둠(Doom) 살인사건'이다. 1990년대 초반 출시된 FPS 게임 '둠'과 '둠2'는 악마적 분위기와 잔인한 연출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많은 마니아들을 낳았다. 둠을 열심히 즐기던 청소년 한 명이 학교에서 친구를 총으로 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구속됐지만 그의 부모는 "둠이 자신의 아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며 둠의 개발사인 ID소프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의 미시간 대학 연구팀은 지난 2005년 18~26세의 남자 13명을 대상으로 '택티컬 옵스:어썰트 온 테러'라는 FPS 게임을 일주일에 15시간씩 5주 동안 하도록 하면서 뇌의 사진을 찍었다. 연구팀은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는 것과 뇌의 공격적 패턴 사이에 연관성이 발견됐다."면서 "사회의 우려대로 폭력적인 게임과 공격적 행동 사이에 신경학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본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레이싱 게임이 실제 운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도 있다.

지난 3월 독일 뮌헨대학교와 알리안츠센터는 "198명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를 벌인 결과 레이싱 게임을 한 이후에 실제 운전석에 앉은 실험자들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흥분했으며 위험한 도로 교통 상황에서도 안전 운전보다 과감한 운전을 감수하려 했다."고 밝혔다. 게임을 즐기던 남성 운전자들은 위험한 도로 상황에서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 1초 늦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폭력적인 게임이 인간의 공격성을 자극한다는 데는 이론이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특정 범죄자의 범행 동기를 게임에서 찾는 것은 결과와 원인을 혼돈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애초부터 범죄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기에 폭력적 게임에 빠져드는 것이지, 폭력성 게임이 정상인을 범죄자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크리스티안 루트비케는 그런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총기 난사 범행자는 자신의 내적 환상과 경험세계와 들어맞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게임을 찾는 것일뿐, 게임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게임을 범죄 유발 요인으로 보는 것은 게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기성세대들의 고정관념이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내 최대의 게임 커뮤니티인 루리웹에서는 "폭력적인 게임과 성향의 관계는 증명된 것이 하나도 없다. 오래 전에 있었던 공개처형·화형을 본 마을 사람들은 다 살인마가 되었나?", "대인기피증 등 사회부적응자들이면 모를까 일반 성인들에게 게임의 유해성을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등의 의견이 우세했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키워드

FPS게임

1인칭 슈팅 게임(First Person Shooting). FPS 게임에서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게이머의 시각이다. 그래서 1인칭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슈팅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총싸움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1인칭 화면이기 때문에 게이머는 주인공과 일체감을 많이 느끼게 되고 몰입감이 타 장르보다 강하다. 화면에 뿌려지는 형식은 1인칭이지만 캐릭터의 뒷모습이 나오는 게임은 TPS(Third Person Shooting)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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