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배려의 메시지를 담은 건축물들을 도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다. 이윤 창출의 극대화와 최대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노는 공간을 두고 보기에 아까워 그냥 두지 못하고, 법을 내세워 남의 일조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빼곡히 들어선 빌딩 숲 속에 사노라면 어느새 경쟁과 자본의 논리 속으로 말려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런 건축물들은 자기만의 선을 지니지 못하고 높은 담 안에서 깡총하고 반듯하게 깎여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가장 중심이며 자본의 논리가 가장 강력히 기능할 것 같은 곳에서 옛 정취와 여백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거리와 집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 인사동과 북촌은 그런 여백의 아름다움이 숨 쉬는 공간이다. 미술관 옆에 예술공방들, 그 옆에 찻집과 박물관과 늘어선 한옥들이 줄지어 있다. 북촌의 집들은 언덕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람과 차가 비켜서야만 겨우 지나다닐 만큼 골목길은 좁다.
자칫 답답할 수 있는 그 좁은 거리에서 우리는 여유와 멋이 깃들여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건 바로 마당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이 살기에도 모자랄 수 있는 좁은 공간을 쪼개서 풀과 나무와 돌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여유가 생기고 운치가 살아나는 것이다.
공간을 100% 활용하기보다는 60만 사용하는데, 40의 여백이 운치를 자아내고 그 운치가 오는 이들의 마음과 영혼에 존재감과 평화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삶과 흐릿하게 겹쳐진 이미지인 그 여운은 현실에서 나온 것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이미지로 파장을 일으킨다.
은근하고 무심한, 햇살을 닮은 희망과 가볍게 터지는 웃음 같은…. 공존과 치유의 메시지를 울리는…. 그렇게 평온이 깃드는 순간 그곳은 새로운 생기와 창조의 장소가 된다. 게다가 유리를 통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들과 가게들은 안팎의 구분이 없이 서로 열려있음을 느끼게 한다.
투명한 존재들, 별 꾸밈도 없이 소박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에 드는 사람들 역시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이고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열린 공간들은 주체와 객체가 밀고 당기며 조화를 이루며 '예술'과 '문화'를 키운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고뇌와 열정이 담긴 젊은 예술가의 작품을 100원에 볼 수도 있고(윤인선 전), 작은 공간을 빼곡히 채우며 살뜰히 속내를 이야기하며 고뇌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하고(이다 전), 또 다른 이의 눈이 되는 점자촉각아트북을 만드는 공간도 있고('우리들의 눈'), 각양각색의 장신구들과 수공예품들을 현장에서 만들어가며 파는 젊은 예술가들과 생산자들, 이름을 걸고 자신의 감각과 아이디어를 전시하는 가게들이 그 거리에 무지개 빛깔로 빛나는 것이다.
내가 그 거리에서 여백의 미학과 함께 느낀 또 다른 하나는, 가장 개인적인 작업들이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공감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거리에서 아티스트들은 자기존재의 깊은 상처와 방황과 불안, 희망을 도도하면서도 수줍게 내어놓는다.
그 거리가 문화와 예술이 생성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마다의 색깔로 가장 개인적인 삶의 느낌과 생각들에 집중하고 나지막이 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계 없이 마음껏 열어두고 자기를 전시하는 이들은 자기와 소통하며, 동시에 타인과, 세계와 소통하고자 팔을 벌린다.
어쩌면 예술과 문화는 다름 아닌 자기 안에 여백을 두고 노는 것, 놀면서 일하고 놀이의 흔적들 안에서 탄생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사람이든 공간이든 혹은 시간이든….
우아한 선을 간직하고 마당과 투명한 유리로 지어진 집들 사이에서 나는 소통과 배려의 메시지를 읽는다. 그리고 따뜻해진다. 발이 아프도록 그 거리를 헤매는 일조차 행복해지기도 하고…. 소통과 배려의 언어로 지어진 집들이 사는 거리가 여기, 대구에도 생겨나기를 또한 기도해 본다.
이은주(문화평론가·대구여성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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