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어수업 TESOL 통한다)대구 도원고 색다른 수업현장

"조금 번거롭지만 학생들 말문 텄죠"

23일 오전 대구 도원고의 한 1학년 교실. 영어 수업이 한창인 교실 안 모습은 여느 인문계 고교의 그것과는 판이했다. 모둠별로 앉은 학생들은 커다란 종이에 키가 작다, 뚱뚱하다, 얼굴이 못났다, 피곤하다 등 자신의 고민을 영어 단어로 적어 옆 모둠으로 전달했다. 각 모둠에서는 전달받은 고민에 대해 어떤 충고를 해줘야 할지 활발한 영어 토론이 이뤄졌다. 학생들은 이번에는 작은 쪽지에 자신의 고민을 적은 뒤, 교실 안을 돌아다니다가 마주치는 친구에게 "What's wrong?(무슨 일이야?)"이라고 말을 건넨 뒤 쪽지를 교환했다. 쪽지를 주고받은 학생들은 다시 자신의 모둠으로 돌아와 잠시 생각을 한 뒤 이번에는 '카운슬러'가 돼 고민에 대한 답을 적어 되돌려줬다. 수업 시간 내내 이뤄진 이날 활동은 모두 영어로 진행됐지만, 학생들의 표정에선 멋쩍거나 어색해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어 교사, TESOL을 만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매번 이런 식의 수업을 할 순 없지요. 일주일에 한 번 이런 회화 위주 수업을 진행하지만, 효과는 한눈에 나타납니다."

학생들의 활동을 지켜보던 김미경(38·여) 영어 교사는 뿌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교과서를 펴서 문장을 읽고 해석하고, 문법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영어 수업 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 왜 이처럼 번거로운 방법을 택했을까 궁금했다.

"지금까지 10여 차례 교사 연수에 참가했지만 더 좋은 교수법이 없을까 늘 고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내 수업시간을 지루해하는 듯한 표정을 보면 정말 위협적이었어요. 매너리즘을 깨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죠."

김 교사가 대구시 교육청의 TESOL 과정을 처음 수강한 것은 대곡중학교에 근무하던 지난해 여름방학. 교육청이 교사들의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 처음으로 개설한 강좌였다. 김 교사는 동료 중·고교 교사 39명과 함께 미국인 TESOL 전문강사(트레이너)들이 진행하는 수업에 3주 동안 참가했다. 미국 동부 버몬트주에 위치한 TESOL 전문대학원 'SIT'에서 파견된 원어민 강사들이 '담임 교사'로 배정됐다. 강의는 하루 6시간씩 이론 수업과 배운 것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실습해보는 시범수업으로 빡빡하게 진행됐다.

"처음엔 황당했죠. 트레이너들이 요구하는 것들이 너무 생소했으니까요."

트레이너들은 '프리(Free·수업전 흥미를 유발하는 단계)-듀링(During·핵심을 전달하는 단계)-포스트(Post·배운 것을 학생들 스스로 표현하는 단계)' 등 전통적인 수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요구했다. 과연 교실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실습이 진행될수록 영어로 편안하게 수업을 진행하는 자신의 모습과 재미있어하는 학생들의 표정에서 힘을 얻었다. 김 교사는 이후 겨울방학에도 3주간 TESOL 강의에 참가했고 마침내 국제 영어 교사에 도전할 수 있는 TESOL 수료증을 얻게 됐다.

▶영어 수업이 쉬워졌어요

두 번의 방학, 180시간 동안의 TESOL 강의를 받은 뒤 김 교사는 "수업이 쉬워졌고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TESOL 강의에서 배운 것들을 철저하게 적용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했다.

우선 수업의 도입부가 바뀌었다. '오늘 배울 것은….'이라고 알리는 대신, 5분가량의 간단한 퀴즈를 풀거나 노래와 율동을 가미하는 등 웜업(Warm-up) 활동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굳은 표정이 풀렸다.

학습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학생들 스스로 수업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영어문장을 말한 뒤에 '언더스탠드?'라고 묻지 않고, 그 물음을 이해했다면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트레이너들은 이것을 '컨셉 체킹 퀘스천(Concept Checking Question)'이라고 부르더군요."

전통적인 수업방식에서는 수업 목표를 미리 학생들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지만, 트레이너들은 "학생들이 그것을 미리 알 필요는 없다."고 했다. 상식을 뒤집는 것이었다. 교육청이 주최하는 수업발표대회에서는 수업 목표를 미리 알리지 않는 것이 감점 사유가 될 정도로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트레이너들은 "수업 마지막 단계에서 학생들이 내용을 소화하고 표현하면 되는 것"이라며 "이 단계를 체크하는 것이 바로 교사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형성평가 방식도 바꾸었다. 학생들은 'Family(가족)'에 대한 내용을 배운 뒤 문장을 쓰거나 빈 칸을 채우는 대신 친구에게 자기의 가족사항을 설명할 줄 알면 되도록 했다. 트레이너들은 학생들이 자신과 관련시켜 수업 내용을 체화(體化)하는 'Internalize(인터널라이즈·내면화)'를 특히 중시했다.

"읽고 쓰는식의 전통적인 영어수업 방식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게 없습니다. 말하기가 강조되는 요즘의 흐름에 맞춰 학교 영어 교육의 현장도 이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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