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승진이라는 위기

신입사원 때부터 똑똑하고 부지런하던 청년이 있었다.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하여 마흔 무렵에 부장이 되었다. 아래로는 몇 명의 과장을 통솔하고 위로 임원들을 모시는 입장이 된 것이다. 모두들 그의 승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항상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는 입사한 지 십여 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부장이 된 뒤부터 부서에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우선 회사의 허리인 과장들이 못 견뎌했다. 부서를 옮겨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사표를 제출하는 사람도 있었다. 부장인 그는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아침에는 일찍 나왔고 저녁에는 늦게 퇴근했다.

부서의 모든 업무를 자세하게 알고 있었고,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보고서는 없었다. 문제가 그에게 있는지 과장에게 있는지 회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명한 경영진은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었다.

그 부장이 너무 부지런해 아직도 모든 보고서와 공문을 일일이 자신이 작성하고 있었고, 외부의 고객도 모두 자신이 만나고 있었으며, 임원으로부터 내려오는 정보도 자신만 알고 있어서, 그 부서의 하급자들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할 일이 없어진 과장들과 대리들이 불평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경영진은 그 부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이런 점을 지적해 주었으나 십 년 넘게 살아온 그의 업무 태도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경영진은 이제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조직을 관리할 필요가 없는 보직으로 변경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지런한 부장에게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승진은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다. 오히려 위기가 닥쳐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 아무도 한 단계 높은 직책에서 처신해야 하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 반면, 높아진 계급이 주는 권위에 따른 달콤함에는 쉽게 적응된다. 그 결과 승진 후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간부 사원이 생기게 되고, 회사에도 어려운 일이 생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까? 첫째, 대부분의 승진이 개인의 과거 실적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금관리 실무를 훌륭하게 수행한 사람이 자금부장이 되고, 많은 계약을 따낸 영업 실무자가 영업부장이 된다.

그러나 부장의 역할은 부서 조직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사실은 그가 부장이 되는 데에 필요한 조건이지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과거의 실적도 중요하나 미래에 그가 수행할 일에 얼마나 적합한가를 더 많이 따져야 한다.

둘째, 사람은 항상 과거에 그가 잘 해왔던 일, 개인의 성공 경험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것을 십 년 넘게 하여 오늘의 자리에 이른 사람에게 정시 출근해도 된다고 말하면 오히려 당혹스러워한다.

보고서를 잘 작성하던 사람에게 이제부터 그 일은 아랫사람에게 맡기라고 하면 불안해할 뿐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였음을 자각하고 그 환경에 맞는 업무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은 매우 현명한 사람이다.

셋째, 대부분의 조직에서 승진 예정자에게 승진 후의 리더십에 대해 교육하는 일에 신경을 덜 쓰기 때문이다. 각 직급에 맞는 리더십, 회사가 요구하는 리더십에 관한 그림이 안 갖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지난 십수 년간 과거의 실적이 나라에 큰 보탬이 되었다고 평가된 분들을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모셨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실적을 바탕으로 승진하여, 과거의 업무 처리 방법으로 직책을 수행한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이번 달 초에 미국과의 FTA 합의가 있었다. 이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과거의 실적을 바탕으로 행한 일이 아니고, 과거의 업무방법으로 처리한 일이 아니다. 미래의 나라 모습을 먼저 생각한 결과이고, 편하고 익숙한 전통적 지지자들보다 관료라는 전문집단을 활용하여 이룩한 성과이다.

지지율이 급등한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유권자라는 임명권자가 금년 말에 다시 한번 인사권을 행사할 기회가 온다. 과거의 실적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업무 과제와 범위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지도 같이 평가하면서, 동시에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도 평가해 인사권을 행사하기를 바란다.

김연신(한국선박운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