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 공대(VT)가 총기 참사의 엄청난 충격을 딛고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이번 사건은 이역만리 밖 우리에게도 큰 아픔이다. 미국이 결코 "한국의 잘못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속의 죄책감과 슬픔이 당장에 가시지는 않을 것 같다.
그 풋풋했던 청년들, 하지만 한순간에 지상에서 사라지고 만 그들을 떠올리면서 어떻게 가슴 에이지 않을 수 있나. 우리 인생 도처에 바닥 모를 심연의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앞에서 겸허를 배우게도 된다.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건 '네 탓이야'라는 비난의 소리를 듣기 힘들다는 점이다. 범인 조승희와 그 가족은 물론 미국 정부와 학교 등에 대해 증오와 분노가 폭발할만도 한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오히려 한 이민 가정의 외톨이 청년을 품어안지 못했던 자신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32명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조승희의 추모석에도 꽃과 애도의 편지가 놓인 것에는 그만 가슴이 먹먹해질 판이다. '널 미워하지 않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이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 네게 손 한번 내밀지 않았던 나를 용서해줘….'아무도 그의 추모석 앞에서 언성을 높이지도, 편지를 찢지도 않고,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사람도 없다 한다.(나중에 그 추모석이 어디론가 사라지긴 했지만 꽃과 편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남의 눈 속 티는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거나 아예 외면하는 우리 사회다. 그런 우리에게 버지니아 참사 현장의 용서와 포용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수族(족)의 기도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다. '위대한 신이시여, 내가 내 이웃의 모카신을 신고 한 걸음이라도 걸어보기 전에는 결코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도록 해주소서.' 모카신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바닥이 평평한 신발로 산악지대에서 살아야 했던 인디언들의 생활 특성에 가장 잘 맞는 신발이다. 모름지기 남의 발에 딱 맞게 지은 신발은 내 발에는 불편하게 마련이다. 수족의 기도에는 남을 비난하기 전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번 버지니아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용서'라는 고귀한 가치관이 더 이상 멸종 위기에 빠지지 않게끔 일깨워주는 것 같지 않은가.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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