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의료사고 근본 대처가 필요하다

최근 필자는 부천 순천향병원에서 발생한 여중생 수술 후 사망사건의 처리 과정을 인터넷과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접했다.

보호자 측의 증언을 빌리자면 학생이 팔굽혀펴기 도중 팔이 골절돼 병원을 찾게 되었고, 병원은 골 양성종양에 의한 일종의 병리학적 골절로 보고 골절 치료와 동시에 종양 수술을 했다. 여기까지 과정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수술 중 갑작스런 상태 악화로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결국 숨졌다는 것이다.

병원이 밝히는 1차 원인은 폐색전증이라고 추정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하기를 원했지만 유가족은 이에 불복하고 시신을 병원 로비에 두고 병원과 긴장관계를 가지면서 종국에는 경찰까지 개입해 물리적인 충돌 끝에 일단락됐다고 한다.

필자는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신경외과 의사이며, 불의의 사고로 숨진 여중생과 같은 나이의 딸을 두었다. 내가 아무리 의사 입장에 역성을 든다고 하더라도 내 딸이 단순한 팔 골절로 수술 후 사망하게 된다면 나 자신도 눈이 뒤집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일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의 억울함이나 원통함을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날의 충돌 현장을 보며 병원을 경영하는 원장으로서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감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을 해보자. 시체가 병원 로비에 안치돼 있고, 유가족은 이성을 잃어 버린 상태에서 수십 명의 정체 모를 관계자들이 병원을 일부 점령한 뒤 꽹과리며 고성을 질러대고 있다면 이후 병원의 운명은 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병원급의 병원이 이 정도 상황이라면 중소병원이나 개인의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 변명을 하려는 의도는 없다. 결과적으로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귀책사유야 어떠하든간에 사망에 관한 한 진료를 책임진 주치의와 병원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필자는 인정한다.

하지만 죽음 뒤 오는 유가족과 병원의 극한 대립에서 벗어나 서로가 냉철히 상황을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의료사고라고 일컬어지는 유형의 사고가 공식·비공식을 합해 한 해 2만 건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이런 폭발적인 의료사고의 발생을 접하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현실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병원과 의사는 진료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의료사고 후에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자신의 논리와 병원의 이익 및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해명과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국민들도 이제는 부천 순천향병원 사건과 같이 시신을 볼모로 하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양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의료사고를 겪은 당사자들도 아프면 결국 병원과 의사를 찾아야 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병원이 밉고 의사들의 행위 자체가 밉다고 병원을 안 찾을 수만 있다면 문제는 해결이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국가도 이번 기회에 수십 년간 지지부진한 의료사고 보상법을 전면 검토해 일정부분 국가가 책임을 질 부분이 있다면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의료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일어나며 불가항력적인 측면도 있을 수가 있다. 의사로서 나 자신도 언젠가 이와 유사한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을 느끼고 진료를 하고 있는 실정이며 주위에는 의료사고로 인해 병원 문을 닫는 의사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부천 순천향 병원 의료사고를 접하면서 시신을 두고 유가족과 병원이 충돌하는 슬픈 광경이 없어지고 합리적인 대화와 조정을 통해 상식적인 합의가 도출되는 현실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명섭 굿모닝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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