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를 꼬아본 적이 있는가. 난생 처음 해보니 잘 되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새끼 비슷한 형태가 겨우 만들어졌는데 슬쩍 당기니 맥없이 풀렸다. 어르신들은 너무나 쉽게 꼬았다. 양 손바닥에 볏짚을 넣어 슬슬 문지르는 것 같은데 단단하고 두툼한 새끼가 만들어졌다.
청송 짚풀문화보존회 회장 서정태(88) 할아버지는 "이걸 어디 배웠겠나. 살다보니 자연스레 익힌 것이지."라고 했다. 벼를 수확하고 남은 짚으로 생활용품을 만들어 쓴 것은 그리 먼 옛날 일이 아니다.
◆타고난 예술가?=예전 남자들은 집안에서 틈만 나면 새끼 꼬고 짚신을 삼았다. 추수가 끝난 후에는 짚으로 지붕을 올렸고 농한기에는 멍석이나 망태, 소쿠리 등을 척척 만들어냈다.
1950년대에도 짚신을 신는 사람이 꽤 많았다. 20여 년 전만 해도 농가에는 짚으로 만든 멍석, 소쿠리 따위가 한두 개쯤 있었다. 짚 생활용품은 내구성 때문에 오래 쓸 수 없어 요즘에는 잘 보기 어렵다. 시장에서 몇 천 원짜리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제품이 범람하는데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
영주시 안정면 노인회관에서 만난 김해수(75) 할아버지는 "겨울철에는 집집마다 수십 켤레의 짚신을 만들어 벽에 걸어 놓았다."며 "나무하러 갈 때는 발이 베일까 봐 짚신을 꼭 신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짚신은 이틀 정도 신으면 떨어지기 때문에 자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김 할아버지는 양쪽 엄지발가락에 새끼 네줄(날)을 걸어놓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새끼를 좌우로 연결해 짚신을 만들었다. 그는 "예전에는 날카로운 꼬챙이를 밟아도 괜찮을 정도로 매끈하고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몇십 년 만에 해보니 잘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영주시 안정농협은 올 1월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짚공예품 제작교실을 열었는데 40명 이상의 노인들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황갑수 조합장은 "처음에는 강사를 초청하려 했는데 어르신들이 몇시간 정도 하니 금방 옛날 실력을 되찾더라."며 "쌀 홍보를 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짚 공예품을 선물로 나눠줄 계획"이라고 했다.
노인들은 반듯하고 깔끔한 모양의 망태, 소쿠리 등을 척척 만들고 있었다. 안정면 노인회장 권오엽(73) 할아버지는 "농촌에서 자란 70대 이상이면 누구나 이 정도 실력을 갖고 있었다."며 "예전에는 짚을 잘 다룰 수 없으면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술과 생활의 경계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우리 할아버지들은 타고난 공예가임에 분명하다. 한국사람의 정교한 손 기술과 예술감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현장이 아닐까 싶다.
◆남자들만의 작품=짚을 다루는 일은 전적으로 남자들이 맡았다. 짚은 벼에서 곡식알을 제거하고 남은 줄기와 잎이어서 딱딱하고 거칠다. 부드러운 여자 손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겨울철 농가에서는 동네 남자들이 모여 함께 새끼를 꼬면서 한담을 즐겼다.
10년 전부터 짚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서봉원(82·예천군 보문면)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손바닥이 부풀고 아프지만 나중에 굳은살이 박이게 되면 괜찮다."고 말했다. 오래 하다 보면 손바닥에 지문이 없어지고 손바닥 가죽이 무척 두꺼워진다고 했다. "누가 찾아오면 기념품으로 주기도 하고 서울, 대구의 카페 주인들이 실내장식용으로 한두 개 사가는 정도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소일거리로 만들고 있지."
청송문화원 김익환 사무국장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가르치고 싶은데 배우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훗날 이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의 볏짚 문화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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