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왜 무궁화인지를 알고 싶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속에도 그 연유는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사쿠라(벚꽃)가 일제히 폈다 지는 것에 대한 대응논리로 줄기차게 피고 지는 무궁화의 개화 방식을 두고서 사람들은 그냥 민족 역사에 빗대는 것 같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다. 역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무궁화가 그런 연유로 국화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류문화학자 오오누키 박사는 일본인의 美(미) 의식과 군국주의의 왜곡된 역사를 책 제목에 담았다. '뒤틀려버린 사꾸라'. 일본 사회에서 사쿠라의 등장은 헤이안(平安) 시대이다. 그 이전까지 고대 일본의 상류층 표상은 대륙 중국의 '매화'에 대한 찬미이다.
결국 매화로부터 사쿠라 옷을 갈아입게 되는 자신들의 실체(identity)에 눈을 뜬 것은 겨우 1천여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1920, 30년대에 이르러 사쿠라 군국주의는 최고조에 다다른다. "천황을 위해서 사쿠라 꽃처럼 아름답게 죽자"이다. 야스쿠니신사 입구에 줄지어 서있는 사쿠라가 바로 그 잔영이다. 미당이 읊은 가미가제 야스쿠니 부대의 마쓰이 하사관에 대한 찬가,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 伍長 頌歌)는 사쿠라 찬미의 결정판이다.
오래된 중국 역사서에서는 근족·槿花族(근화족)이 자주 등장한다. 무궁화와 친하게 지내는 우리의 모습에서 그들이 지어준 한민족의 별명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터에는 자생하는 무궁화가 한 포기도 발견되지 않는다. 전부 일부러 식재한 개체이거나, 그로부터 유래하는 것들이다.
이 땅은 무궁화의 고향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궁화(Hibiscus syriacus)의 기원은 중동으로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피었던 아열대 건조지역이다. 유대교 종파에서 부르는 찬송가 '샤론의 장미'는 바로 무궁화를 지칭한다. 놀라운 일이다. 중동이란 지리적 위치는 아프리카 동부에서 걸어 나온 인류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는 출구이기에 인류 이동과 무궁화는 분명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무궁화는 한 편의 생명 탄생을 연출한다. 꽃봉오리가 뒤틀리며 개화하는 것이 세상 밖으로 비쭉이 내미는 영락없는 출산의 형국이다. 암수술대(남근)를 감싸고 있는 꽃잎(갈피)의 형상(좆갈피)은 여자를 의미하는 말의 근원으로 발전한다. '조개'의 어원은 조가비이고, 그 조가비의 뿌리가 좆갈피이다. 일본에서도 여성을 '가이'(ガイ, 貝), 조개에 빗댄다. 일본 사람들이 생명문화의 상징으로 삼는 동백나무의 일본명, 쯔바끼(ツバキ) 또한 좆갈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 그루의 무궁화는 수백 포기의 꽃을 피운다. 꽃이란 자식을 만드는 생식행위,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섹스를 하지 않는다. 낮에 피어 있다가 어둡기 전에 살포시 꽃망울을 닫고서 은밀히 한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핀다. 아직 임신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이다. 자식이 잉태되면 다음날 꽃망울을 닫고 떨어진다. 그러니까 무궁화는 우주적 생명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 고향의 큰 어른 청파 선생, 그의 '무궁화' 수필 속에는 진실을 가리는 애국주의적인 지적 프리콜라주(자신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것)가 있다. 시인의 말처럼 "무궁화는 한 송이 한 송이로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떨어지는 꽃"이 아니다. 더욱이 "아무데나 피는 꽃"도 아니다.
"피투성이 싸움에 젖은 머리를 무궁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로잡겠다."는 구절은 가히 촌철살인이다. 이제 더 이상 "쓸쓸한 울타리 옆, 거친 들판, 외로운 길가, 아무데나 피어 쓸쓸하고, 거칠고, 외로움을 아늑하고 즐겁게 하는 꽃", 그런 애잔스런 꽃으로 볼 일이 아니다.
1천 년밖에 되지 않은 야스쿠니 사쿠라에 대비되는 그런 꽃으로 무궁화를 구속시키는 것은 자학이오, 비굴함이다. 45억 년 전 생명의 터전, 지구가 마련되고, 6천500만 년 전 오대양 육대주가 모양을 갖추고, 바로 엊그제 500만 년 전 인류가 시작된 이래, 우리는 한 포기 무궁화도 자생하지 않는 땅에서 그 무궁화를 품에 안고 유라시안 대륙의 동단에 지금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 동쪽, 동해에서 여명이 트는 새벽 햇살의 무궁화 꽃은 눈이 부시도록 깨끗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철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로 그릇된 환상을 타파해야 할 생명의 꽃, '무궁화'이다.
김종원 계명대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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