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이 있는 길)윤대녕의 '천지간(天地間)'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구요? 믿을 수 없겠지만 걸어서 왔습니다. 물론 읍내 터미널에 내려 바로 군내(郡內)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었지요. 그래요,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폭설이었죠. 하지만 그 여자가 터미널에서부터 줄곧 여기까지 걸어왔던 거예요. 네, 한 시간도 넘게 걸리더군요. 글쎄요, 제가 왜 그 여자의 뒤를 따라왔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윤대녕, '천지간(天地間)' 부분

여기는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구계등(九階嶝)이다. 보길도로 향하는 문학기행 여정에 고집스럽게 구계등을 포함시켰다. 어느 해 겨울 새벽 땅끝으로 가는 길이 싫어 구계등으로 차를 달렸던 기억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끝이란 말은 슬픈 법이다. TV문학관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는 '천지간'이란 소설의 배경이기도 하고 그 소설의 작가인 윤대녕이 90년대의 문학적 전환을 이끈 사람이기도 하기에 구계등은 문학기행지로 손색이 없다.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에서 주인공은 문상을 가는 길에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고 이상한 느낌으로 그 여자를 따라간다.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여자도 아니었다. 생면부지의 여자를 뒤따르는, 그것도 폭설이 내리는 길을 세 시간이 넘게 걸은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사실 나 자신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상황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문상'을 간다는 생각이 나의 의식 속에 죽음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의 얼굴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결코 놓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것이 인연을 만들어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인연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것만큼 일상적인 무엇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그때부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이라는 인연을 가지게 된다. 그런 만남 중에서 옷깃을 스쳐가는 그런 사소하고 단순한 만남도 있고, 일생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그런 만남도 존재한다. 만남의 크기는 다르지만 그런 만남들은 모두 소중하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들이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한 대목처럼 반드시'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에'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설 '천지간'과 구계등은 바로 그러한 인연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정도리 구계등, 1973년 명승 제3호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도립공원이다. 파도에 밀려 표면에 나타난 자갈밭이 아홉 계단을 이루었다고 구계등이라 한다. 계단이라고 하면 잘 감이 안 온다. 아홉 개의 돌 언덕이라는 표현이 어떨까? 아홉 개의 계단이 끝나는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양의 극치 9의 숫자가 상징하듯 그곳은 피안의 세계, 정토의 영역이 아닐까? 활모양의 자갈밭으로 이루어진 해안선,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 있는 상록수 방풍림. 그리고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동백숲. 가만히 파도가 치면 자갈이 울려 내는 소리가 들린다. 갯내음과 갯돌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사람의 소리는 완전히 묻혀 버린다. 나를 버리는 방법은 알고 보면 이렇게 쉽다.

함께 간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소설의 주인공이 낯선 여인과 묵었다고 생각되는 민박집에 앉아 구계등 해변을 바라보았다. 잡어로 이루어진 회를 먹으면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모두들 자연산 회가 맛있다고 한다. 멀리 소리꾼 여인이 판소리를 부르다 몸을 던진 바위도 보인다. 섬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이 아주 따스하다. 한겨울에 다시 만난 구계등, 동백이 아직 피지 않아 아쉬운 느낌이 많았지만 어디에선가 소설 속의 여인이 나타날 것 같아 자꾸만 창밖을 기웃거렸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 윤대녕의 '천지간(天地間)'

'천지간'은 1996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윤대녕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 내가 여자의 만남을 통해 제시하려는 것은 기이한 인연의 문제이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만나게 된 기이한 인연의 모습에서 작가는 삶의 존재 양상을 발견하고 밋밋한 여로의 구조에서 오히려 빛나는 삶의 진실을 찾는다. 우리 삶이란 것은 어쩔 수 없이 우연과 일상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속 가운데에서 작가는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삶의 깊이에 도달한다. 작가에 의해 주어진 소설적 장치는 매우 고독하고 어둡고 슬픈 것이지만 작가는 그러한 상황에 머물지 않고 극복하고 있다. 이른바 인간구원의 문제, 나아가 생명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 그 속에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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