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초교 6년생의 과외를 맡게 된 대학생 이모(23·여) 씨는 과외 수업 첫날부터 깜짝 놀랐다. 학생의 부모가 내놓은 교재는 다름 아닌 학생이 다니는 영어학원 교재로, 고교 수준이었던 것. 학부모는 이 씨에게 "좀 한다 하는 애들은 다 그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조금만 도와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꼭 학원 교재로 수업해 줄 것을 부탁했고, 이 씨는 어쩔 수 없이 그 교재로 수업을 하고 있다.
유명 학원에 다니기 위해 개인과외를 해야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초교생들을 대상으로 고교 수준의 교재를 사용해 수업을 하는 학원이 늘면서 이 학원에 보내거나 학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개인교사까지 고용, 보충 과외를 하는 '주객 전도'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 실제 이들 초교 6년생 선행학습용 교재엔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문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부모 황모(43·여·수성구 시지동) 씨는 "내용이 어려울수록 더 잘 가르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내 아이가 최상급 레벨에 있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1년 전부터 특정 학원에 보내고 있다."며 "일정 수준에 오른 학생들의 경우 이런 학원들이 쫓아 가야 할 지향점이 돼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유명 학원 강사는 "학원이 학교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르친다는 인식 때문에 학원 수업과 과외 수업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고 "일부 학원의 경우 이러한 공교육을 불신하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노려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 수준의 선행반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찍부터 선행학습에 나선 아이들이 '능력 부족'을 느끼면서 두통 등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김모(13·달서구 상인동) 군은 "학원 숙제하는데 최소 3시간이 걸리는 등 너무 힘들고 머리가 아파 과외 선생님에게 숙제를 다 부탁한 적도 많다."고 했다. 반면 학부모로서는 20여만 원이나 되는 학원비에다 학원교재 과외를 위한 개인교사 비용까지 지급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백용매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입시제도에 따른 불안감과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뒤섞여 결국 아이들을 더욱 힘든 상황에 몰아넣는 사회병리현상을 낳게 됐다."며 "이러한 현상에 무조건 따라가기보다 교육의 당사자는 학생인 만큼 각각의 능력에 맞게 기회를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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