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동산병원 입원실. 배에 연결된 호스로 고름과 피를 빼내고 있는 신재훈(21) 일병을 어머니 곽순옥(48) 씨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신 일병은 지난 27일 자신의 간 70%를 떼어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간경화로 생명이 위독한 작은아버지를 위해 선뜻 나선 것. 휴가를 나와 작은아버지의 병세를 들은 그에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병원에선 앞으로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전해왔다. 신 일병 외에는 가족 누구와도 혈액형이 맞지 않았던 작은아버지를 위해 그는 결국 12시간의 대수술을 견뎌냈다.
그가 작은아버지를 살려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휴가 나온 당일. 그의 휴가 사유는 아버지의 부음이었다. 3년째 간경화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임종을 맞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 부대에서 한달음에 대구로 내려온 것이었다. 그는 "처음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간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예후도 좋다는 통보를 했었기 때문. 하지만 복병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오랜 시간 병을 앓아왔던 아버지의 몸에 패혈증과 뇌수막염이 찾아온 것. 결국 아버지는 위독하다는 판정을 받은 지 하루 만에 가족 곁을 홀연히 떠났다. 그런데 바로 그날, 장례식장에서 그는 작은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허망하게 아버지를 보낸 그는 "작은아버지마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보낼 수 없었다."며 수술실로 직행한 것. 현재 작은아버지 신범석(46) 씨는 동산병원 중환자실에서 회복기를 맞고 있다.
사실 그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주일 만에 수술대에 누웠던 데엔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곽 씨는 '더 이상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간 이식과 관련, 재훈 씨와 상의했다는 것. 처음엔 곽 씨도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었던' 아들을 수술대에 눕혀야 하는 현실이 힘겨웠다고 털어놨다. 조카 덕에 남편을 살리게 된 작은어머니 백명순(42) 씨는 매일같이 재훈씨 병실을 들른다고 한다. 백 씨는 "재훈이와 형님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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