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한권의 첵] 오 하느님/조정래

소설 '오, 하느님'은 조선인으로 일본군에 징집돼 관동군 고바야시 부대원으로 전투에 투입됐다가 소련군 포로가 되고, 다시 소련군에 편입돼 모스크바 사수를 위해 독일과 전투를 치르다가, 독일군 포로가 되고 다시 독일군에 편입되고, 노르망디 해안에서 미군의 포로가 돼 연합군이었던 소련 땅으로 후송된 후 총살당한 신길만이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한 장의 빛 바랜 흑백사진에서 출발한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끝나기까지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작중인물들의 생사와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은 2차 세계 대전사를 구획 짓는 중대한 순간과 상당 부분 겹쳐진다. 2차 세계대전이 인류 역사에 중대한 획을 그었다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인류 역사에 가장 중대한 순간에, 가장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대한 갈림길에 서서, 가장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역사가 그들을 위해 배당한 자리는 없었다.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 '미군의 포로' '소련에서…….' 등 다섯 개의 소제목이 붙은 '오 하느님'을 통해 조정래는 그들의 자리를 찾아주고자 한다.

주인공 신길만은 역사의 피해자인 식민지 출신 인간으로 태어나, 식민지의 슬픔을 안고 살았지만, 결국은 식민지 사회와 그 편에 섰던 국가의 배신자 자격으로 총살당한다. 마지막에 독일군이 돼 연합군과 싸웠기 때문이다.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살았고, 아무런 상관없이 죽어야 했던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거대한 사회 속에 살지만 자신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이름과 직위를 부여받고 살다가 죽어 가는 소외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계간 '문학동네' 2006년 겨울호, 2007년 봄호에 걸쳐 2회 분재되었던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이 소설은 원고지 600매가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하 역사소설을 주로 써온 조정래는 이 얇은 책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할뿐만 아니라 인간이 무엇인지,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책은 얇지만 그 속에 포함된 세계는 광대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역사의 전환기, 세계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지만 정작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살았으되, 살지 않았으며, 죽었으되 죽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거기 서 있었지만, 역사와 국가는 그를 기억해주지 않았다. 소설가 조정래를 통해 비로소 그는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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