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친구'라는 말만 달랑 적혀 있는 편지 한 장. 그것은 옛친구 'A'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였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 보겠다며 원대하고 막연한 포부를 가지고 함께 몰려다닌 적 있었다. 하지만 젊음은 서서히 기력이 쇠했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A는 문학을, 나는 항해를 택했다.
오랜 항해 후 나는 수단 항구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A는 작가가 되었다. 편지는 A가 죽기 이틀 전에 쓴 것인데, 그의 집을 청소해주던 아주머니가 봉투에 적힌 주소 그대로 나에게 보낸 것이다. 나는 끝맺지 못한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알아내기 위해 A가 살던 파리로 간다.
A를 알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는 그가 자살한 원인을 추론하고 재구성한다. 드러난 원인이라면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것 뿐. 배신은 죽음보다 잔인하다. 그것은 '지난 일을 모조리 뒤집어엎고 그 의미를 철저히 오염시켜서 과거까지도 훼손'시키므로. 하지만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그뿐이었을까?
이 소설은 한 개인의 사랑과 배신과 파멸을 말하고 있으나 그보다 더 큰 상실과 망각의 아픔이 전편에 흐르고 있다. 요컨대 중첩적인 사랑과 이별과 단절의 이야기다. 올곧은 정신과 고귀한 영혼이 도저히 발붙일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운 절규이며 연민이다. 그래서 문장 속의 '그 여자'를 '이 시대'로 바꿔서 읽어도 별 무리가 없다.
"정신이 경박한 사람들, 극단적으로 격렬한 감정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의 외적인 나약함을 조소하거나 가혹하게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사랑할 때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철저히 희생한다는 것도, 그러한 자아의 포기에는 위대함이 있다는 것도 그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속을 자기 세력의 도구로 삼는 사람에게 지배당하기를 수락한다는 것은 언제나 저열한 일이다. 그러나 사랑에의 종속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저열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사랑에의 종속은 구속이 아니라, 자신을 영원토록 불멸하게 만들고 영혼과 육체의 아름다움 속에서 계속 생성하고자 하는 고결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망이 설사 비웃음거리가 되거나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이를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 여자가 이를 알지 못했다면, 그 여자도 불행하다. 혹시 알면서도 망각하고 싶어했다면 더더욱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로 망각할 수 없는 일이어서, 그 여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여자의 영혼은 죽은 영혼이다."
작가로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었던 A. 그는 결코 나약하지도, 자아를 포기하지도, 어딘가에 종속되지도 않았다. 성실과 정직과 명예가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 죽은 영혼들의 시대, '운 좋은 사람, 허풍선이들, 사기꾼들이 승리를 거두는 광대한 노름판' 같은 시대를 괴로워하고 스스로를 파멸시키면서도 그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을 뿐이다. 책장을 덮자마자 또 한번 더 읽고 싶어지는 독특한 향기의 글이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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