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중국 5·4운동 발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승국인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모인 파리 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이 차지하고 있던 중국 산둥성에 대한 특권을 일본이 계승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에 격분한 중국 국민들과 학생 약 3천 명이 1919년 5월 4일 천안문 앞에서 집회를 가진 후 가두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각국 외교사절들에게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공사관으로 가려고 했으나 들어가지 못하자 더욱 분노하여 친일 매국노로 지목되어온 차오루린 집으로 몰려가 집기를 부수고 집을 불태워버렸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군경을 파견하여 학생 30여 명을 체포했다. 학생들은 이에 항의, 체포학생 전원 석방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동맹휴학에 들어갔고 국산품 장려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 반일운동을 전개했다. 시위가 확대되자 정부는 다시 대규모 탄압을 감행해 학생 약 1천 명을 체포했다.

그래도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 강경해지자 중국 정부는 학생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친일 매국노 관리 3명을 파면시키고 강화조약의 조인거부 운동이 계속되자 베르사이유 강화조약의 조인을 거부하기로 방침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1929년 미국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 출생 ▶1989년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에서 금성궤도선 마젤란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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