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인 최희진(30·여·가명) 씨는 매일 오후 회사를 마치는 대로 곧장 친정으로 향한다. 돌이 된 아들을 온종일 혼자 돌봤을 어머니 생각에 저녁 약속 등은 꿈도 못 꾼다. 지난해 4월 아들을 출산한 그는 출산 휴가 3개월을 제외하곤 지금껏 아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겼다. 그나마 아이를 맡아 줄 가족이 없어 100만 원 안팎의 돈을 지출하며 보모에게 맡겨야 하는 친구들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에게 갓난 아기를 맡긴 뒤부터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일해 본 적이 없다. 온종일 아이에게 신경을 쓰고 돌봐야 하는 어머니가 편찮으시기라도 하면 최 씨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다. 밤이슬을 맞고 퇴근하는 남편에게 의지할 수도 없었다. 아이도 조모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지만 사회성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아들과 함께 있어 줄 수 없는 그가 어머니의 양육 방법까지 간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속앓이를 하며 1년을 보냈고, '이제 둘째 낳아야지' 하는 주변의 말이 많지만 엄두를 못낸다. 최 씨는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아이를 생각해서도 동생을 낳고 싶지만 이런 양육 환경에서는 하나도 벅차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장·노년층의 사회 활동도 활발해지면서 자녀 양육 문제가 가정의 최대 '골칫거리'가 됐다. 양육자 부재로 자녀 양육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자녀를 가지지 않거나 방치하는 경우도 적잖아 핵가족화를 넘어 가정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친·외할머니가 키워주는 경우는 최선책. 보모나 보육원에 맡기지 않은 채 아이들끼리 남겨 두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어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적잖은 문제가 되고 있다.
2005년 통계청의 '자녀 양육 실태' 자료에 따르면 할머니가 손자를 양육하는 등 친·인척이 아이를 돌보는 경우가 18.3%로, 부모가 직접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62.1%)를 제외하곤 가장 많았다. 아동을 혼자 방치하거나 아동끼리 낮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전체의 8.7%로, 친·인척이 양육하는 형태 다음으로 높았다. 이는 지난 2002년 5.3%에 비해 크게 늘었다.
문제는 자녀 양육 방법이 한정돼 있다는 것. 할머니나 보모, 보육원 등이 전부다. 심심찮게 터져나오는 각종 '끔찍한 뉴스'에 친척이 아니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아침·저녁이 아니면 얼굴을 맞댈 수도 없어 '제대로 정서가 형성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에 관련 전문가들은 전문 보육사 양성, 직장 보육·유아원 확대 등 사회 및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민영하 대구가톨릭대 아동학과 교수는 "사회적 양육 시스템 부재가 지금과 같은 가정 해체 위기를 낳았다."며 "현재 '누가 아이를 키워 주느냐'가 가장 큰 고민거리지만 적극적인 정책 추진으로 앞으로는 조부모든, 보모든, 보육시설이든 '어떻게 교육받느냐'가 가장 중시되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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