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李·朴, '常山의 뱀' 을 닮아라

▲ 김정길 명예주필
▲ 김정길 명예주필

중국 常山(상산)에는 率然(솔연)이란 뱀이 산다고 한다. 이 뱀은 적이 머리를 치면 꼬리가 같이 달려들어 싸워주고 꼬리가 적에게 공격당하면 머리가 같이 지원 공격을 하며, 적이 몸뚱이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동시에 달려들어 막는다.

孫子(손자)는 그의 兵法(병법) 九地(구지)편에서 이 상산의 뱀을 예로 들어 '용병을 솔연처럼 할 수 있어야 강한 군대로 적을 이길 수 있다'고 썼다.

李(이)명박' 朴(박)근혜 두 사람이 또 싸웠다. 언론은 '시각차를 드러냈다'거나 '충돌했다'는 정치적 용어로 둘러 썼지만 링 바깥의 관객(민심)들이 보기엔 '싸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갈등의 골을 메워보자고 만든 당 내분 수습 회동 자리가 '화합'이나 '결집' 같은 단어 대신 '대운하는 사기극'''여자는 애를 낳아봐야…' 따위의 묵은 말꼬투리나 되씹는 걸로 끝났으니 '또 싸웠다'고 할 수밖에 없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깥의 적에 맞서 함께 나서 싸워주는 솔연의 모습이 아니라 제 꼬리가 제 머리를 찌르고 제 머리는 제 꼬리를 물며 몸통(당)이 위험해도 나 몰라라 제 살길만 찾는 꼴과 흡사하다. 合心(합심)과 상호 구원의 정신이 없다. 적은 분리되고 나는 하나로 단합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라면 李'朴이 싸우는 지금의 한나라당 모습은 孫子(손자)가 볼 때는 必敗(필패)의 黨(당)이다.

손자는 또 상산의 뱀 編(편)에 吳越同舟(오월동주)의 용병론도 덧붙였다. 마치 한나라당이 보라고 써둔 게 아니냐 싶을 만큼 李'朴에게 딱 들어맞는 병법론이다.

본디 오월동주는 원수지간인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도 속으로는 서로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그러나 손자는 오월동주 의미를 전술적 시각에서 한 단계 뛰어넘어 해설하고 있다. '평소에 서로가 아무리 싫어하는 오월동주 사이라도 같은 배로 큰 강을 건너가다 폭풍을 만나는 상황이 되면 마치 한 사람의 왼손과 오른손이 움직이듯 호흡을 맞춰 움직여야 같이 산다'고 했다.

경선을 앞둔 李'朴은 한나라당이라는 한 배를 타고는 있지만 속마음은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처럼 제각각 딴마음, 그야말로 오월동주 격이다.

한 사람은 이쪽으로 가야한다며 南(남)으로 노를 젓고 또 한 사람은 저쪽이 맞다며 北(북)으로 노를 젓고 있다. 그러나 이제 곧 범여권과 新黨(신당), 親盧派(친노파)당의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뱃전 사방에 풍랑이 일 것이다. 그때도 거꾸로 노를 저을 것인지, 한 사람의 왼손과 오른손처럼 할 것인지는 李'朴의 몫이요, 한나라당의 선택이다.

계속 상산의 뱀 같은 투지를 보이지 못한 채 낡아빠진 舊態(구태) 정치의 朋黨(붕당) 다툼만 되풀이하면 차라리 잘못한 좌파였지만 된통 혼났으니 다음에는 제대로 정신 차려서 잘할지 모른다 싶은 팀에 눈길을 되돌릴지 모르는 게 민심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60% 가까운 국민 중에 그런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을 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날 두 사람의 舌戰(설전)을 보면서 黨舍(당사) 회의장 TV에 비친 '선진'평화'미래'라는 구호가 왠지 시골 서커스단 광고처럼 초라해 보였다. 낡은 기싸움 정치에서 '선진'을 느낄 수 없었고 가시 돋친 독설에서 '평화'는 보이지 않았으며 그런 모습에서 '미래'는 더더욱 안개처럼 희미해 보였기 때문이다.

李'朴 두 분은 이제라도 상산의 뱀에게서 단합의 정치를 배우시라. 한나라당을 아끼고 기대는 마음에서 드리는 苦言(고언)이다.

몇 달 새 거푸 고언을 드림은 이대로 서로의 머리와 꼬리를 물고 치며 적이 몰고 올 폭풍 앞에 엇박자로 노를 저어가다 당이 갈라질까 걱정돼서만이 아니다. 야당이 어이없는 붕당싸움으로 무너지면 또다시 어부지리로 정권을 횡재한 집단이 대놓고 저지를 일들이 불안해서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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