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부동산과의 전쟁은 끝났다?

절대 추락하지 않을 것 같던 집값이 마침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하룻밤 새 몇 천만 원씩 상승하며 서민들의 허탈감을 곱씹게 하던 강남 집값이 수억씩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 '10·29'와 2005년 '8·31', 2006년 '3·30' 대책 등 연이은 고강도 부동산 처방책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던 집값이 '종부세'를 앞세운 세금 중과와 분양가 상한제를 골자로 한 '1·11' 대책에 무릎을 꿇고 가는 숨을 쉬어가고 있다.

'이제 집값 상승은 끝났다'는 건교부 장관의 '선언'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것을 보면 몇 년간의 눈물겹던 '투기 세력'과의 전쟁에서 정말 정부가 '승리'를 한 것이 명백한 것 같다. 지난 몇 년,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국민들도 힘든 싸움을 해야 했다. 가진 재산이 없는 이들은 '이룰 수 없는 내집 마련 꿈'에 가슴앓이를 했고, 집 장만에 나서려는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는 분양가에 놀라 빚을 내 계약을 했을 것이다. 또 여윳돈이 있는 이들도 '알박기'로 '분양권 전매'로 몇 천만 원, 몇 억씩 돈을 번 이들의 소문을 듣고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 부동산 투자(?)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약발 없는 정책을 쏟아내며 정부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고통의 대열에 원하지 않은 동참을 강요당한 셈이다.

이제, 몇 달 사이 세상은 바뀌었다. 급매물이 나와도 사려는 이들이 없고 계약을 후회하며 해약을 문의하는 전화가 주택회사마다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승리'는 했지만 정부가 마지막 카드로 내놓은 '부동산 정책'은 적잖은 후유증을 가져오고 있다. 보유세(종부세)는 선진국의 일반적인 추세라고 하더라도 50%를 넘나드는 양도세는 유례를 찾아 보기 어렵다. 상식을 뛰어넘은 양도세는 거래 경색을 불러올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상황은 다른 상처로 곪아 터질 것이 뻔하다. '분양가 상한제' 도입으로 주거 선호도가 높은 곳의 아파트 공급을 억제하고 도심 외곽에 임대 아파트를 지어 주거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안 또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앞둔 나라에서는 비정상적 대책이다.

공권력을 동원한 인위적인 정책이 시장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없고 이런 점을 볼 때 '부동산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것은 대다수 서민들이 계속 겪어야 할 고통이다.

종부세 대상인 상위 1% 부자들은 부동산 자산이 조금 줄더라도, 세금이 많더라도 걱정 없이 살겠지만 나머지 99%는 다르다.

새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도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갈 수 없고 '1가구 2주택' 양도세에 겁먹어 전세조차 마음대로 내놓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또 힘들게 대출받아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은 분양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마이너스 프리미엄에 밤잠을 설쳐야 한다. 없는 이들도 DTI(자산 대비 부채비율)란 생소한 대출 규제에 묶여 다주택자들이 내놓은 집을 살 형편도 아니다. 또 수도권에 비해 경제력이 취약한 지방 대도시가 겪는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 하여튼, 비정상적인 집값을 잡은 정부의 공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지만 '승리'에 취하기보다는 '때 놓친 승리'가 가져오는 부작용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시기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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