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한·미 FTA 효과 논란

"장밋빛 전망 불과"…"품목별 결과 기초"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11개 국책 연구기관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한미 FTA 경제적 효과 분석 결과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정부 의중에 맞춰 부풀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과 함께 구체적 근거 없이 장밋빛 전망만 내놓았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연구원들의 일부 반론도 나왔다. 한국과 유럽연합 간 FTA가 시작된 마당이라 세간의 관심은 다소 떨어졌지만 국회 비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계자료라는 점, 정부가 이를 바탕으로 한미 FTA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점 등으로 볼 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쟁점이다. 이와 함께 정부에 의존하는 국책 연구기관의 한계와 개혁 방향을 짚어볼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 연구기관 발표 내용

한미 FTA가 이행되면 향후 10년 동안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6%(80조 원) 증가하고 일자리는 34만 개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는 46억 달러, 전체 무역흑자는 200억 달러가 늘어나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230억~320억 달러 정도가 추가 유입될 것으로 예상됐다. 타결 이전에 예측한 실질 GDP 증가율 7.8%, 일자리 창출 55만 1천 명 등에 비하면 다소 줄어든 수치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 생산은 연평균 6천700억 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쌀이 개방 대상에 제외되고 서비스 개방도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 규모 역시 당초 예측치보다 줄었다. 전체적으로 봐서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점을 분명히 해 주는 분석이다.

▨ 근거 약하고 의도적인 조작

국책 연구기관들의 발표는 의도부터 의심받고 있다. 언뜻 봐도 형식이 엉성한 데다 내용도 한미 FTA의 효과를 부풀리는 쪽으로 과장된 보고서를 11개나 되는 기관들의 공동 명의로 내놓았다는 데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11개 국책연구원의 연구를 짜깁기하여 자료를 만들다 보니 누가 연구책임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과장·왜곡 의심을 받고 있는 연구를 발표한 뒤 서로 연구결과에 대해 책임 떠넘기기를 했던 것처럼 이번의 경제적 영향 분석 연구를 두고도 그러한 책임 떠넘기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선 연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책임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연구에 대해 책임을 질 자세가 되어 있는지부터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인터넷매체 칼럼)

보고서는 전체 전망이 장밋빛이라는 데서부터 비판받기 시작한다. '연구소 열한 곳의 합동 연구라는 거창한 형식으로 발표했지만 분석 내용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부 의중에 맞춰 부풀린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협정이 체결되면 교역증대 효과는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직접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은 미지수다. 심지어 투자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중략) 경쟁 촉진과 경제시스템 선진화로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은 더 막연하다. 어떻게 해서 기술개발과 기술이전이 촉진되는지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신문 사설)

세부적인 부분은 다소 전문적이지만 일부 비판은 문외한에게도 설득력을 갖는다. '국책연구기관들은 한미 FTA로 생산성이 증대하는 근거를 한미 FTA로 인한 수입 증가와 외국인 투자 증가에서 찾았다. 구체적으로 수입이 1% 증가하면 생산성이 0.19% 증가한다는 것이다. 언뜻 봐도 무리한 가정이다.(중략)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면 생산성이 증대한다는 가정은 그럴듯해 보이나 실증분석은 여러 가지 상반된 결과는 낳고 있다. 학계에서는 수입과 외국인투자 증가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창 논쟁이 진행 중이고 어느 쪽도 우위를 점했다고 말할 수 없는 형편이다.', '서비스업 1% 생산성 증대 가정은 더욱 가관이다. 한미 FTA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미국의 연평균 서비스업 생산성 증가율을 한국 서비스업의 생산성 증가분으로 계산한 것이다. 도대체 미국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과 한미 FTA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인터넷매체 칼럼)

이는 한·칠레 FTA 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빚은 오류까지 언급되면 비난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KIEP는 당시 협정의 경제적 효과로 전년 대비 대칠레 수출이 5억 4천400만 달러 증가, 수입이 2억 2천400만 달러 증가해 무역수지는 3억 2천만 달러가 개선되는 효과를 기록하는 것으로 전망했다. 3년이 지난 현실은 정반대다. 수출은 10억 5천100만 달러 늘어난 반면 수입은 24억 8천600만 달러가 증가, 무역수지는 14억 3천500만 달러 악화됐다.'(신문기사)

▨ FTA 발효 시급, 비판은 신중해야

정부나 연구기관 관계자들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엉터리 자료를 내놓다 보니 연구 당사자들이 변변히 반박 논리를 펴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 연구원이 늦게나마 내놓은 반론은 살펴볼 가치가 있다. '남의 분석, 특히 다수의 학자들이 지혜를 모아 내놓은 결과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CGE 모형이 현재 어디까지 발전되어 왔는지도 모르고 자본축적모형이라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한 어설픈 지식으로 남의 연구결과를 두고 어리광이니 무식이니 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진정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옛 속담이 떠오른다.', '이번 한미 FTA의 영향평가에서는 산업별, 품목별 관세협상 결과가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산업별, 품목별로 관세감축이 수출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데에는 CGE모형보다 각 품목별 수급모형이 효과적일 수 있다. 개별 연구기관이 각각의 전문성을 살려 품목별 관세감축 협상결과에 기초한 무역수지를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전히 멋대로 해석하고 비난하는 것을 일삼는 극소수 사람들의 억지는 안타까울 정도다.'(국정브리핑 칼럼)

FTA를 넓게 해석해서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자는 지적도 나름 일리를 갖고 있다. '한미 FTA를 단순히 관세 철폐나 수출시장 확대 시책 정도로 이해하는 편협한 시각과 개방하면 망한다며 FTA의 부정적 효과를 과장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하는 왜곡된 시각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한미 FTA는 우리의 정치·경제·사회제도 전반을 선진 시스템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이제는 한미 FTA에 대한 소모적인 찬반논쟁을 마치고 정부·기업·국민 모두가 FTA모드로 전열을 재정비해 국가 시스템 리모델링에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이다.'(신문 칼럼)

이는 미국 내 정세에 비추어 국회 비준과 법 절차 마련을 통한 발효가 시급하므로 정략적 이용을 지양하고 FTA의 필요성에 대한 범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당한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이 한결 빠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책 연구기관들은 한미 FTA 반대 진영의 요구대로 분석에 사용된 원자료 공개와 함께 검증을 위한 국회 및 학계의 조사와 공개 토론에 응하는 게 옳다.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신뢰한다면 검증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검증을 받는 게 오히려 국민을 설득하기도 쉽고, 국회 비준도 손쉬울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이 양치기 소년이 되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도 잠수함의 토끼는 못되더라도 국민 세금만 축내는 천덕꾸러기는 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공개 검증에 나서 떳떳하게 한미 FTA를 홍보하는 게 어떤가.(매일신문 사설, '자료 공개하고 끝장 토론하자')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